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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경제민주화가 뜨고 있다. 지난 13일 사상 최대규모였다는 금속노조 총파업이 있었다. 그 직전에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건설노조의 총파업이 있었다. 오는 30일에는 금융노조가 파업하겠다고 조합원의 압도적 찬성으로 결의했다. 바야흐로 총파업의 시대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로 시끄럽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트렌드’가 됐다. 얼마 전까지 요란했던 복지국가를 제치고 대선국면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등 정당을 가리지 않는다. 서로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안철수의 의제이고, 박근혜의 구호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도 오래 전부터 외쳐왔다. 경제민주화. 지금 이 나라에선 민주·진보·보수의 당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강령으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까지도 그것을 실현하겠다고 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정치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경제로의 확장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의 정치를 넘어선 경제로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러나 지금 트렌드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의 민주화를 말한다. 즉 경제적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경제에서의 민주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가 민주화라고 무작정 트렌드라고 좇다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에게 무익하거나 심지어 유해한 짓을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다 대선 이후 다른 낙선후보들과 함께 노동자도 자신이 한 짓을 자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도대체 무엇을 경제민주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노동자는 알아야 한다.

2. 도대체 경제민주화가 뭔데 민주·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서 모두가 자신의 기치로 내세우는 것일까. 경제민주화라니. 경제가 민주화되지 못했으니 민주화투쟁을 해야겠다고 하는 것인가.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하겠다고. 정치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처럼 경제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 아무도 “소수 경제권력이 아니라 다수 인민이 경제를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경제민주화라고 아무도 감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불온한 의문은 경제민주화에서 제외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어느 누구도 경제민주화에 그것을 포섭시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럼 경제민주화는 무어란 말인가.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그 동안 재벌체제를 비판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왔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차지하고서 전횡을 일삼는 재벌(총수)은 해체든 개혁이든 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말했다. 그럼 여기서 경제민주화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소유지분만큼 지배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이 된다. 순환출자 금지·출자총액제한 부활·금산분리 규제 등 금지니 규제니 해서 이건희든, 정몽구든 현재 재벌총수의 지배권은 상실될지 모른다. “안됐군 이건희, 불쌍하다 정몽구.” 이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주가 자신의 주식만큼 기업을 지배하는 주주민주주의가 경제민주화라는 거다. 그런데 이건 노동운동이 죽기 살기로 경제민주화다 해서 투쟁할 것은 아니다. 이런 경제민주화는 1주 1표의 주주평등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자본내부의 평등이지 인민 또는 노동과의 평등이 아니다. 누가 기업의 주인행세를 하느냐 하는 문제다. 누가 됐든 기업을 통해서 노동자를 복종시켜 사용하겠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결국은 배당을 적게 가져가야 회사가 살고 노동자가 사는 거라고, 노동운동은 그 자를 상대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제민주화가 노동운동이 쟁취해야 할 과제는 아닐 것이다.

100대 민간기업 자산총액이 정부 총자산의 95%에 이른다. 삼성·현대자동차·SK·LG 4대 그룹의 지난해 매출액(603조원)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는다.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위주 정책 때문에 재벌의 문어발 확장은 더욱 가속화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과 골목상권은 몰락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은 독점·과점 등이니 이는 기업의 시장지배를 문제 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까지 자유경쟁의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지배력의 문제로 말하고 있다. 이건 시장에서 기업들 사이의 자유경쟁과 평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주체인 기업들의 문제로 파악된다. 독점 등 시장지배력의 문제로 경제민주화를 바라보는 것이고, 결국 공정거래법의 강화가 답이라고 말하게 된다. 한편에선 독점·과점으로 높게 형성된 시장가격 때문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는 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의 강화가 답이라고 말하게 된다. 노동자가 대기업과 경쟁하는 경제의 주체가 아니다. 소비자이긴 해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시장지배기업과 맞서 노동운동이 소비자운동을 절박하게 자신의 주된 운동으로 해야 할 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지지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런 경제민주화가 특별히 노동자의 문제도 아니다. 자본들의 공정경쟁질서의 문제다. 이 경제민주화는 자본 사이의 민주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시장과 거래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질서를 목표로 한다. 이 경제민주화가 확보된 시장이라도 노동운동은 그 공정경쟁의 자본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해 나가야 한다.

일부에선 요즘 한참 부각시키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벌해체니 개혁이니 하는 것으로 한국경제를 위태롭게 하지 말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시켜 고용증대와 생산혁신 등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주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재벌개혁론은 세계적 대기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걸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까. 노동자야 어쨌든 많이 고용해 주면 나쁠 것 없긴 한데. 하지만 이건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것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 하면 그만이다. 복지국가를 민주국가라고 부르자는 것과 다름없는 용어법이다. 어쨌거나 이런 거라면 노동자는 함께 그 구호를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나. 근래 노동조합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조항을 요구안으로 제출하고 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것이고 직접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개념은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말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이상에서 살펴본 것들의 혼합물이다. 그러니 노동자 없이 말해지는 것이다.

3. 헌법을 보자. “국가는 …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규정하고 있다.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 경제주체인 기업의 문제로 경제민주화가 파악돼서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재벌·대기업의 지배력을 규제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경제주체라면 이 헌법 조항에 의해서 경제민주화의 주체로서 보호된다. 자본이든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농민이든. 국가는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조항에 의해 국가는 이들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가 실현되도록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에서 규정한 경제주체로 노동자가 파악될 것인가. 만약 노동자를 경제주체로 취급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에서 말해지는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외쳐야 할 구호가 아니다. 아무리 대선을 앞두고 대권후보자들이 떠들어 대고 그 정당과 운동원들이 외쳐 대도 따라 외쳐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노동자를 경제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용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자가 근로자다. 자본은 기업을 통해서 주체로서 경제활동을 하는데 비해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국가가 법으로 규정하고(근로기준법 제2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등), 그것이 근로계약상의 의무라고 법원이 판결하고 있는 지금(대법원 1994.12.9. 선고 94다22859 판결 등), 세상은 분명히 노동자는 경제주체가 아니라 말하고 서 있다. 노동자가 경제주체가 아니어야 작동된다는 세상에서 노동자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들의 경제민주화에는 노동자가 없다.”

기업 내에서 주주들끼리의 민주주의, 기업들끼리의 경제민주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자를 떠나서 외쳐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자본의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권력의 자본에 대한 통제의 문제일 뿐이다. 주주가 기업을 지배하는 주주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노동의 참여 문제로, 기업들끼리의 경제민주화는 국가단위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개입 문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에 대한 기업의 책임으로 노동운동은 경제민주화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된다고 해도 단체화된 노동으로서의 경제민주화에 불과하다. 복종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로서 설 수 있을 때에야 노동자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것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민의 경제에 대한 의지 실현으로서 경제적 민주주의는 온전한 경제민주화와 만나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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