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남 기자

서울시가 건설노동자 임금체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그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달 3일 "건설근로자들이 하도급 임금·대금 체불로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원·하도급 노무·장비 등 대금지급 확인시스템을 전국 최초로 구축해 10월부터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발주한 공사의 경우 공사대금을 원·하도급업체 지정계좌에 입금하면 자재대금·장비대금·노동자 임금이 분리돼 대금지급이 보장된다. 원청에게 자기 몫 이외의 하도급 공사대금 인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임금과 장비·자재대금 지급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획기적인 정책이지만 빈틈도 있다. 건설현장의 장비자재 알선업자나 건설일용 노동자를 관리하는 일명 '오야지'들이 노동자들의 임금통장을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현장판 배달사고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원청의 대금지급 연기 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서울시 감사관실로부터 나왔다. 감사관실이 지난달 작성한 '하도급대금 미지급 및 임금체불 실태점검 보고'가 최근에 알려진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16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가 진행 중인 하도급 체결공사 1천654건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천640건(99.2%)에서 임금체불 문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서울시는 임금체불 청정지역이라 불려도 무방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보고서를 살펴보니 답이 나왔다. 점검은 현장 노동자와 직접면담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그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공사 현장 전체 노동자수에 관계없이 3인 이상만 확인한 것이다. 100명이 일하는 공사현장일지라도 노동자 3명과 면담해 문제가 없으면 '양호'한 상태로 결정됐다. 감사관실 관계자는 "면담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이야기를 잘 안 해 주는 경우도 있다"며 "양호한 것으로 나왔지만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조사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건설노조는 반발했다. 김창년 건설노조 서울지부장은 "99.2%가 양호하다면 임금체불 해소대책은 왜 만들었냐"고 반문한 뒤 "서울시에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소할 의지가 진정 있다면 그 실태부터 면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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