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최근 유럽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실업률이 낮고, 고용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일자리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단시간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독일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고용노동부와 함께 지난달 6일부터 나흘간 독일 현지에서 취재한 내용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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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1. 근로기준법 개정, 이제 시작?
2. 독일 노동시장 현황과 과제
3. 노동시간단축, 독일 고용위기를 넘다
4. 실업급여·실업부조 투 트랙, 취업을 잡아라
5. 근로시간저축제와 노동유연화,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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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첫 번째 앉은)이 지난달 6일 독일 베를린 한 잡센터를 방문해 현지 직업상담사로부터 취업상담(체험)을 받고 있다. 직업상담사들은 개별 사무실을 갖고 있는데, 취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상담자와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보장한 것이다. 독일 잡센터는 이 밖에도 구직자들이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컴퓨터실과 각종 신문·잡지를 볼 수 있는 쉼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와 매우 유사하다. 고용노동부

"독일 베를린에는 연방정부 소속인 1개의 고용사무소와 3개의 지부(출장소),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운영하는 4개의 잡센터(Job Center)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모두 2천600여명이 일을 합니다. 실업급여·실업부조를 통한 실업자·취약계층 지원과 직업훈련 및 일자리 상담·알선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한 지역 잡센터 일자리중계팀장인 이치어 헤닝 과장은 지난달 6일 한국 방문단을 맞아 "모든 성과는 일자리 매칭을 얼마나 이뤘냐로 모아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독일은 매우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료 청년직업 상담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직업상담가들이 학교를 방문해 학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르츠 개혁, 복지에서 고용으로

독일은 2003년 하르츠(HARTZ) 개혁을 통해 복지에서 고용(취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 때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효과를 발휘했지만, 그 이전부터 독일 정부는 일자리 정책을 통해 꾸준히 고용을 늘리고 실업을 줄이는 노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복지혜택이 다소 줄었다. 또 줄어든 복지혜택이라도 누리려면 기본적인 취업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이 복지국가 혹은 조정경제시장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독일은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여전히 강한 사회보호망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줄곧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도입 못 한 실업부조가 독일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실업급여Ⅰ)는 그대로 유지하되(단 지원기간은 최대 32개월에서 12개월·55세 이상 고령자는 18개월로 줄었다) 정부가 조세로 지원하는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일부 통합해 실업급여Ⅱ를 신설하고, 실업급여Ⅱ 대상자에게 취업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노동능력이 없거나 6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는 사회부조를 지원한다. 하르츠 개혁 이전 독일은 실업급여·실업부조·사회부조를 각각 나눠 지원했고, 구직의무도 부과하지 않았다.

“일할 능력 있으면 일해야”

이 조치는 지금껏 노동능력은 있으나 취업하지 않고 실업부조 혹은 사회부조를 통해 생활을 유지하던 사람들에 대한 복지혜택을 줄이고 구직의무를 부과한 것이 핵심이다. 또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실업부조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줄여 구직동기를 부여했다.

그럼에도 사회보호망은 여전히 튼튼하다. 실업 노동자가 고용보험상 실업급여Ⅰ 지원기간이 끝나도록 취업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정부가 지원하는 실업급여Ⅱ(실업부조)를 받을 수 있다. 취업노력을 기울인다는 전제로, 실업부조는 무기한 지급된다. 또 실업급여Ⅱ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청년이나 미취업자도 받을 수 있다.

독일 정부는 고용서비스도 대폭 강화했다. 특히 실업급여Ⅱ 수급자는 구직의무가 부여된 만큼 취업서비스도 특화했다. 헤닝 과장은 “잡센터는 실업급여Ⅱ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각종 고용·취업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며 “구직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급여액을 삭감하지만 반대로 잡센터는 구직자들에게 적정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잡센터가 독일 전역에 322개(지방정부 독자운영 108개 포함)나 있다. 하르츠 개혁은 구직의무를 부과하면서 취업권리 역시 보장한 정책인 것이다.

노동시장정책, 지역 격차·양극화 해소에 보탬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 정부는 노동자가 취업 후 생활유지에 필요한 적정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는 임금보조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기업이 취약계층 등 적정수준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노동비용보조금을 지원한다. 두 제도는 노동자의 취업유지(임금보조), 기업의 고용유지(노동비용보조) 동기를 부여해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독일의 이러한 노동시장정책은 지역별 고용격차 해소에 보탬이 되고 있다. 전체 실업률이 6.7%였던 올해 5월을 기준(잡센터 제공자료)으로 옛 서독의 자동차산업 부흥을 이끌었던 지역인 바이에른의 실업률은 3.5%에 불과했다. 동독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머른은 실업률이 11.7%(일부 지역은 12.4%)로 3배 이상 높았다.

실업률만 살펴봐도 옛 서독·동독의 경제력 격차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서독과 동독의 지역별 실업률은 5월 기준 각각 5.7%와 10.6%였는데, 지난해 같은달보다 각각 0.3%포인트와 0.7%포인트 줄었다. 동독의 실업률 감소가 서독이 비해 두 배 이상 컸다.

권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는 “독일 정부가 조세를 걷어 모든 지역에 실업부조나 각종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부유한 지역에서 취약 지역에 흘러가는 돈이 매년 60억유로(약 8조5천억원)에 달한다”며 “독일 내 지역별 편차를 줄이고 사회적 재분배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장년층 내일 희망찾기, 독일 실업급여Ⅱ와 유사

한국은 고용보험 가입자를 중심으로 실업급여와 취업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이 복지혜택을 줄이고 구직의무를 부과하긴 했으나 한국 입장에서 봤을 때 고용보험 가입자와 미가입자(실업급여 수급 만료자·청년·취약계층)에 대한 이중의 보호망과 이중의 취업지원 서비스망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독일과 유사한 제도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사업이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청·장년층 내일 희망찾기(취업성공패키지)다. 이 사업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난 청년·실업자와 저소득 장년층에게 정부가 취업 상담·훈련·알선까지 전문적인 취업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제도다. 참여기간 동안 월 최대 31만원의 취업활동수당(훈련장학금 포함)을 지급한다.

고용보험 가입(수급)자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독일의 사회부조) 사이의 저소득 사각지대 계층,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난 장년층을 특정해 사업을 만들었고 일정금액의 수당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독일의 실업급여Ⅱ와 유사하다. 지난해 6만3천728명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올해 대상자 기준이 완화되면서 15만명(청년 5만명, 중장년층 10만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노동부는 내다봤다.

노동부 관계자는 "청·장년층 내일 희망찾기 사업은 미취업 취약계층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며 "실업부조제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용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취업서비스와 일정액의 수당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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