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내년 최저임금이 시급 4천8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6.1% 인상된 금액이다. 물가인상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결정 소식에 분노도 하고 시끄러울 법도 한데 참 조용하다. 물론 기자회견도 하고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도 했다. 하지만 국민임투를 내세운 민주노총을 비롯해 최저임금에 관심이 있는 전 조직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밤새 난장을 벌였던 예년을 생각하면 결정 과정도 참으로 조용했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관심이 없어 조용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서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인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느냐가 노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과 결과에 이렇게 조용한 이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공익위원 선출과정의 문제와 노동자위원으로 국민노총을 배정한 것에 항의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에 불참했다.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법 개정을 위해서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공익위원 선출 과정이 중립적이지 않아서 문제이며,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는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제도 개선에 청신호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참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선택도, 최저임금제도의 문제를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도를 개선해 공익위원이 잘 선임되고,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단계적 인상이 되더라도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들은 시혜의 대상이다. 그 노동자들의 요구와 목소리와 투쟁이 최저임금에 반영되기 어렵다. 또한 최저임금이 하루 8시간 일한 노동자들이 살아 갈만한 임금이어야 한다는 생계비의 원칙도 반영돼 있지 않다. 결국 여야 합의로 제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 끼 식사비 수준인 5천600원에 머물 것이다. 그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주체는 여전히 공익위원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의 최저임금 제도개선 운동을 뛰어넘어 다시 최저임금에 대한 대중투쟁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진행돼 왔던 압력행사 방식의 밤샘난장을 다시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고자 했던 최저임금 투쟁을 다시 복원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제도개선 투쟁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공익위원을 잘 선임하는 것을 넘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투쟁이 최저임금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를 해체하고 노정교섭의 형식으로 전환하든, 아니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하한선을 결정하고 나머지를 투쟁에 의해 결정하는 구조로 만들든, 최저임금의 결정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저임금 노동자들은 시혜의 대상이 되지 않고, 스스로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주체로서 대중투쟁에 나설 수 있다.

또한 최저임금 투쟁 공간이 최저임금제도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모든 노동자는 생활할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최저임금은 더 이상 낮아져서는 안 되는 임금의 최저선이기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제도는 임금을 더 낮출 수 없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이 정도 임금이면 된다’는 기준을 제공해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구실도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 대중투쟁 공간을 통해 최저임금제도의 한계와 생활임금의 의지를 적극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에만 국한하지 않는 적극적인 조직화, 그리고 그 조직에 기초한 생활임금 쟁취의 문제의식이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최저임금 대중투쟁을 다시 복원해 보자.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을 계기로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제도개선 논의에도 적극 나서야 하지만, 국회의원들에 대한 압력 행사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최저임금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대중투쟁이 기획돼야 한다. 다수 노동자들이 스스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야 한다. 동시에 생활할 만한 임금이 자신의 권리라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는 공간으로서, 최저임금 투쟁을 다시 대중적으로 만들어 나가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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