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외투기업에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K씨는 지난해 여름 업무를 수행하던 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K씨가 경적을 울리자 상대방 차량이 의도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는 등 위협운전을 하다가, 급기야는 K씨의 영업용 차량을 막아선 후 다가와서 K씨에게 당장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치며 영업용 차량의 문짝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황한 K씨가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를 하자 상대방 운전자는 달아났고, 결국 상대방은 재물손괴죄에 따른 조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정작 황당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회사측은 K씨에게 가해자 역시 잠재적 고객이기에 가해자에게 일체의 합의금을 요구하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고소를 취하(고소는 하지도 않았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K씨는 합의금을 받을 생각은 없었기에 회사의 지시를 따랐으나, 피해자로서 가해자가 꼭 처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경찰서에 출석해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후 영업용 차량의 소유주인 회사가 가해자와 합의해 재물손괴죄는 기소유예됐고, K씨는 그렇게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을 겪은 K씨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회사는 갑자기 K씨에게 정직 8주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K씨가 지시를 어겨 합의금을 요구하고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으며 K씨 역시 운전 과정에서 가해자를 상대로 위협운전을 하였음에도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허위보고했다는 이유였다(사측은 그 증거로 가해자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중 관련된 전체영상이 아닌 45초 분량을 제시했으나 K씨는 그 부분도 위협운전이 아니라 무당횡단자를 피하다 끼어들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징계의 사유와 시점을 감안할 때 노동조합 가입에 따른 불이익 처분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K씨는 당해 징계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으나 심문과정에서 나타난 공익위원의 질의내용은 당혹스러웠다. 최초 가해자가 차량을 막아선 후 내리라고 했을때 내리지 않고 문을 잠근채 차에서 내리지 않은건 K씨 스스로 본인의 위협운전을 인지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만약 잘못한 것이 없었다면 당당하게 내려서 가해자를 설득하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K씨가 내려서 가해자에게 폭행이라도 당했어야 했다는 말인가(회사는 폭행사건이 발생했어도 합의금을 요구하지 말고 고소를 취하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당 노동위는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판정서에는 징계사유와 관련해 "고소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보여짐에도 신고했고,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함으로써 사용자의 지시를 무시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기재돼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용자의 징계처분이 정당하려면 징계의 사유·절차·수단이 정당해야 하고 이 중 한가지 요소라도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면 징계는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판단돼야 한다. 특히 징계사유와 관련해 사용자의 징계처분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행위가 취업규칙 내지 단체협약상의 징계사유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규정돼 있는 징계사유 그 자체가 정당해야 한다. 나아가 징계사유가 추상적·포괄적인 경우에는 근로자 보호의 관점에서 한정적으로 해석돼야 한다(대법원 1992.7.14, 92다3230 등).

그러나 K씨의 사례를 통해 돌아볼 때 이러한 징계의 제한원칙들이 실질 노사관계에서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노동위의 판정이 그렇다. 법적 근거에 대한 학설상 대립에도 불구하고 어찌됐건 사용자는 소속 직원들에 대한 적법한 징계권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권이 인정된다 하여 회사가 정한 모든 사유가 전부 징계사유로 인정돼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K씨의 경우처럼 범죄의 피해자에게 회사가 민·형사상 일체의 대응을 하지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하는 중징계의 정당성이 인정돼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업무수행 과정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직원에 대해서는 회사가 배려를 해줘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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