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부원장

최근 경제 민주화는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주도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올해 초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 합류해 경제 민주화 내용을 주장하다가 사퇴한 김종인 전 의원이 다시 박근혜 캠프 선대본부로 결합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포함해 상속증여세 철저 징수, 법인세율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실효세율의 대폭 상향, 산업용 전력요금 특혜 폐지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실제 과정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단 환영할 만한 주장이다.

아울러 새누리당 내의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도 지난달 5일 공개 세미나를 가진데 이어, 28일에는 리서치앤리서치(R&R)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86.9%는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한다고 밝혔다. 의외(?)인 것은 경제 민주화를 책임질 정당으로서 28.5%가 새누리당을 지목한 반면, 민주통합당을 선택한 응답자는 22.2%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주체가 새누리당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가 국민으로부터 부자정당, 친재벌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각하는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긴 친재벌 정치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마저 지난달 28일 비상경제대책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대기업들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제 전경련만 빼놓으면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가 된 셈이다.

사실 최근의 내외적 환경을 보건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누구도 지금까지의 경제 시스템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는 신자유주의주의가 초래한 위기가 쉽게 수습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보수 역시 지금의 자본주의를 액면 그대로 미래로 연장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의 중심부에 있는 기존 재벌체제도 많건 적건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꼭 진보의 판단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재벌개혁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두가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 상황에서, 진정 무엇을 꼭해야 하고 무엇이 가장 절박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재벌증세를 진정성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기업 중 과세표준 5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전체 40만 여개 법인 가운데 1% 미만, 즉 400개가 안 된다. 이들의 법인세를 27%이상으로 올리면 대략 5조~8조원 사이의 증세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만나는 교집합에 재벌 법인세 증세라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있는 것이다. 물론 증세를 하는 마당에 법인세 감세특혜를 해지하고 최저한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패키지로 함께 가야 한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진정성 있게 경제 민주화를 요구했다면 무엇보다 재벌 법인세 증세 방안에 찬성할 것이라고 본다.

둘째로, 90년 이후 자산 기준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모두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받아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았던 지독히 불공정한 관행을 확실히 없애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마디로 재벌총수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19대 국회 첫 날 민주통합당 원혜영 의원 등이 횡령·배임 등의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에 대해 더 이상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없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발의했다고 한다. 이 법안의 찬성 유무도 경제 민주화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재벌증세와 재벌범죄 불관용을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예시로 든 것은, 그것이 재벌에게 말뿐이거나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효적인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특별히 재벌에게 과중하거나 불리할 것도 없는 대단히 일반적인 규칙을 재벌·대기업 집단에게까지 공정하게 연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개원됐으니 이렇게 경제 민주화도 주장과 실천을 병행해 가야 할 것이다.

전경련도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여전히 경제 민주화보다는 경제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우선 연구개발 세액감면 등 자신들이 아직도 누리고 있는 온갖 특혜를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이 ‘규제가 없으면 구제도 없다’던 것처럼, 한국의 재벌도 ‘규제가 없으면 특혜도 없다’는 원칙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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