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이 5일간의 대장정 끝에 같은달 29일 마무리됐다.

화물연대가 요구한 강제성 있는 표준운임제 실시, 화물노동자 권리보호, 과적근절,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위한 관련법 개정은 정부에 의해 사실상 거부됐다.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회(CTCA)와 벌인 운임협상 역시 요구안 30%에 한참 미달하는 9.9%로 합의됐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은 요구 달성수준으로만 보면 패배에 가깝다.

총파업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이 강제성 있는 표준운임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화물운송시장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재벌 대기업의 이윤 독식,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등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은 예전과 달리 보수언론까지 화물연대 요구의 타당성을 인정할 정도로 호의적인 여론 속에서 진행됐다. 이번 파업을 통해 표준운임제,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 등은 화물연대와 관계 당국 사이만의 의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로 확대됐다.

표준운임제는 더디지만 의미 있는 발전을 10년째 해 나가고 있다. 2003년 5월 표준운임제를 처음 제시했고 2005년 정부와 여당이 처음으로 표준운임제를 공식화했다. 2007년 11월에는 시범실시에 합의했고, 2008년 6월에는 표준운임제 법제화 합의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표준운임제 시범 실시를 거쳐, 올해 6월 ‘직접 강제’ 있는 표준운임제의 첫 당론(민주통합당) 채택과 사회적 의제화까지 이뤄냈다. 8월 임시국회, 9월 정기국회, 2013년 2~5월 임시국회 등에서 화물연대가 이 성과를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화물연대 출범 이후 10년 차에 진행된 올해 총파업은 사실 그 결과보다도 파업 과정과 이후 운동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조직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의 파업 효과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총파업을 앞두고 기름 값이 하락해 비조합원들의 파업 참여가 2008년 6월에 비해 줄어든 점은 객관적인 정세의 한계라 할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진행된 2006년 12월과 비교해보면 조합원들의 조직력이나 집행부의 지도력 모두 상당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많은 조합원들이 이야기하듯 현재 화물연대는 정치적·조직적 위기 상태다.

또한 지입제와 다단계 하청구조 등 수십 년을 이어져온 화물시장의 구조적 문제들, 시장의 정점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재벌 화물운송기업들을 넘어서는 일은 몇 번의 총파업으로 단숨에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화물연대가 조직적 힘을 가지고 끈질기게 계속 싸워야만 하나하나씩 바꿔낼 수 있는 것들이다. 화물연대는 한 번의 파업에 대한 평가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적 힘을 배가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10년차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을 통해 다른 10년을 위한 혁신과 계획을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 중 하나는 화물연대가 새로운 조직화 계획을 가지지 않으면 앞으로 상당히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물연대가 전통적으로 파업의 핵심으로 삼았던 컨테이너 거점들만으로 화물연대가 예전과 같은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여러 자동화 장비를 갖춘 부산신항이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갔고, 다른 항만과 내륙 컨테이너 기지 역시 점차 자동화·전산화로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 컨테이너 항만의 파업 대처 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식료품 등의 품목들이 항만이 아닌 공항을 더 많이 거치게 됨에 따라 전통적 항만 봉쇄만으로 교섭력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커지고 있다.

한국 화물운송시장 구조가 점차 경량화된 화물들이 늘어나고 있어 화물연대 조합원이 많지 않은 윙카·탑차 등의 중소형 화물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화물연대 조합원이 거의 없는 글로비스를 선두로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비중이 시장에서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들의 일상적 화물연대 탄압이 높아지고 있다. 파업 시기에도 이들에 의한 파업 파괴 공작 역시 늘어나고 있다. 현재 시장 변화에 화물연대 조직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주요 공단과 공항에서 운행하는 윙카·탑차를 비롯해 택배 간선, 유통업체 간선 화물차 등에 대해 시급히 조직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글로비스 등 재벌·대기업 물류회사의 화물노동자 역시 반드시 화물연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조직화 과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획만 제출될 뿐 의미 있게 사업이 집행된 적은 없었다.

화물연대는 2002년 여름 십여 명의 초동 주체가 단 1년 만에 2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조직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의 경험을 다시 오늘에 되살리고, 구체적 계획과 책임 있는 실천을 해 나간다면 주요 산업 38만 명의 화물노동자 상당수를 조직하는 것도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10년 차 화물연대의 새로운 10년을 기대해 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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