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발전재단

하르트무트 자이퍼트(Hartmut Seifert) 독일 한스-뵈클러(Hans-Bockler)재단 전 사회경제연구소장(66·사진)은 3일 '한국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유연화를 매우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질문에 "80년대 내가 썼던 칼럼을 보여주고 싶다"고 답했다. 당시 독일에서 노동유연화 제도가 논의될 때 그 자신도 비판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봤고, 각종 언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칼럼을 썼다는 뜻이다.

자이퍼트 전 소장은 그러나 "지난 30년간의 경험은 노동유연화와 고용안정의 교환이 독일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을 줬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노동유연화는 사용자 관점에서만 논의됐지만 최근에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도 필요한 제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95년부터 2009년까지 14년 동안 한스-뵈클러재단 사회경제연구소장을 맡았다. 올해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사회경제연구소는 독일노총(DGB)이 초대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한스뵈클러재단 산하 연구소로, 독일 싱크탱크 중에서도 권위와 연륜을 인정받는 곳이다. 그는 '노동시간과 구조조정'·'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안정' 등에 관한 책을 썼고, 일부 저서는 국내에 번역돼 출판됐다. 노사발전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자이퍼트 전 소장을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관심이 오래전부터 있었나.

"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노동시간에 관해 연구했다. 최근에는 노동시간유연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자들은 유연성을 원하는데, 고용유연성(해고)보다는 노동유연성 확대를 통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제시한 방안이 노동시간밴드 모델이다. 이 모델은 통제된 노동유연성을 확보해 기업의 경기변동 대응능력을 높이면서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컨대 금융업의 경우 평균 노동시간이 주당 39시간인데, 위기시 31시간까지(8시간 내에서)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기본 철학은 노동유연화와 노동시간단축, 고용안정이다."



- 이를테면 사용자가 원하는 노동유연화와 노동자가 원하는 고용안정을 맞교환하는 것인가. 근로시간계좌제를 포함한 이런 제도가 독일에서 활성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렇다. 그런 맞교환은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다. 이런 강점은 노동자의 고숙련에서 나온다. 사용자도 인력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위기 때도 인력 유지에 노력한다. 또 노사의 대표성과 통제력이 강하다. 독일은 노동시간과 관련한 제도를 법이 아닌 사회협약이나 산별협약·단체협약을 통해 마련하고 적용한다. 똑같은 근로시간계좌제라도 기업별로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시행 과정에서 조정해야 할 사항도 많다. 독일은 노사가 산업별·기업별 협의를 통해 이런 갈등을 조정한다. 이런 세부적인 조정이 없다면 제도가 시행되기 어렵다. 산업과 기업 단위에서 강한 노사 단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 한국은 노사보다는 정부가 근로시간계좌제와 같은 제도를 법을 통해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중요한 것은 산업별·기업별로 노사가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노동유연성은 '통제된 유연성'이다. 어느 정도까지 노동시간을 유연화할지 노사가 협의를 통해 조정한다. 그 범위 내에서만 유연성을 보장한다. 규제 없는 유연성은 없다. 한국에도 기업별로 노사협의체(Works Council)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독일에서는 기업별로 노사협의체가 잘 발달해 있다. 법으로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노사협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 한국 노동자들은 노동유연화 제도를 매우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독일어를 할 줄 안다면 내가 80년대 썼던 칼럼을 보여주고 싶다. 당시 독일에서 노동유연화가 논의될 때 나 역시 매우 비판적이었다. 취지에도 동의하지 못했지만 현실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의 경험은 노동유연화와 고용안정 보장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을 줬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노동유연화를 원하는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일생을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일하는 것은 노동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하루는 짧게 일하고 하루는 길게 일하고 또 하루는 휴가를 내고, 노동시간을 유연화한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고 그런 욕구가 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는 노동유연화가 도움을 주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럴 때 노동유연화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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