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7월 총력투쟁, 8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양대 노총이, 민주노총이 투쟁을 선언했다. 이제 이 나라 노조운동은 7월로 접어들면서 투쟁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교섭은 결렬이고 파업이 준비되고 있다. 말의 시기는 가고 무기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노동의 요구가 이렇게 투쟁으로, 전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어느 시기에 집중된 단발적인 총력투쟁, 총파업으로 예정하고 있지만 이제 이 나라 노동운동은 바야흐로 무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권리는 무기가 선언한다. 아무리 법치주의라고 해도 그것은 무기 없는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무기를 내려놓고서 벌이는 권력의 잔치가 법치주의인 것이다. 오히려 무기로서 법치주의는 존속할 수 있다. 경찰·감옥·군대 등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권력기구가 아니라도 법치주의를 작동시키는 수많은 기구가 현대 국가의 무기다. 노동과 자본의 권리도 그렇다. 결국 무기의 힘이 권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면 이 나라에서 노동의 권리가 이 모양인 것은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의 무기가 이 모양이라서 그런 것이겠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노동의 무기가 어떻길래 이런 것일까.

2. 헌법의 눈으로 보자.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와 완전히 동등한 기본권 행사의 주체다. 대한민국 헌법은 기본권은 “모든 국민은…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내지 제37조) 근로자도 국민이고 사용자도 똑 같은 국민이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고(제23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지는 것에(제15조) 더해 근로자는 근로자의 권리를 가지고(제32조),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을 가진다(제33조).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 내에서(제119조 제1항) 이처럼 노동과 자본은 동등하다고 대한민국 헌법은 권리선언하고 있다. 그러면 이 나라에서 노동과 자본은 동등해야 마땅했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노동과 자본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법의 제정이든, 법의 집행이든 권력은 노동 위에 자본을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은 노동기본권의 행사로 자유롭게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을 행사해서 자본과 대등하게 이 나라 근로자·근로조건의 질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했다. 사업장에서든 사업장을 넘은 국가영역에서든.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적어도 노동관계는 노동과 자본의 대등한 공동의 결정으로 정해져야 마땅했다. 유럽의 사민주의 나라들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노동존중의 나라니 어쩌니. 지금 무슨 플랜이고 기치라고 내세우는 것들은 이미 대한민국에선 이미 낡은 질서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것들은 이 나라에서는 낡은 질서가 되지 못하고 새로운 질서라고 외쳐지고 있다. 헌법의 눈으로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구호는 식상하고 광장에는 흘러간 옛 노래만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 마디로 이렇게 선언했다. “노동과 자본은 동등하다. 단결해서 노동은 자본에 맞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라.” 그러나 이 나라 현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동과 자본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노동은 자본에 맞서 단결해도 이 세상에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노동의 권리선언을 이렇게 철저히 짓밟아버린 것일까. 그건 무기가 짓밟혔기 때문이다.

3. 헌법은 동등하다고, 노동의 무기를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금지하고 제한했다. 노동의 무기는 법률로써 그 무기의 사용자와 사용법이 엄격히 제한됐다. 이로써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당연히 노동과 자본의 대등하고 자유로운 결정으로 노동의 권리가 정해지는 질서여야 했다. 그런데 자본은 자신의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노동은 헌법이 보장한 자신의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법률은 노동의 무기를 빼앗아 버렸다. 이것을 두고서 이 나라에서는 자본에 맞설 노동의 무기를 국가가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아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헌법은 이미 노동자에게 그것을 줬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본에 맞설 노동의 무기조차도 빼앗았다고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본의 무기는 더욱 커졌다. 자본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자본 자체였고 그것은 국가의 법으로 더욱 확고하게 보장됐다. 하지만 노동의 무기는 더욱더 제한됐다.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규정한 구 노동조합법, 구 노동쟁의조정법,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53년 제정돼서 제·개정될 때마다 개악됐다. 2010년 초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및 근로시간 면제제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로 또 다시 개악됐다. 이렇게 노동의 무기가 개악됐으니 지금 이 나라에서 보잘 것 없는 노동의 권리는 딱 노동의 무기가 보장된 크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법정근로시간은 근로시간의 규제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단지 법정수당의 기준시간으로 전락했다. 임금은 근로의 대가가 아니라 근로 일부의 대가로서만 기능하도록 평균임금제도, 통상임금제도를 파악해서 운영해 왔다. 취업규칙 작성권이라고 해서 사업장에서 근로조건 및 복무규율의 결정권한을 사용자에게 줬다. 비정규직·정리해고 제도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이 모양이다. 무기의 그늘에서는 권력은 무기의 노래를 부른다. 무기를 빼앗긴 노동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법도, 그 법의 집행도 그랬다. 노동법, 노동부의 행정해석, 법원의 판례는 그랬다. 오직 그 법문언과 그 해석기술에 농락당한 바보만이 그것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말하고, 그 중 일부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지금까지 이래왔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무기의 그늘에서 자신의 무기를 빼앗기고서는 노동의 권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고작 사업장의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에 매몰됐다. 산별노조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통일적으로 교섭해서 체결할 것이냐에 머물렀다. 무기를 빼앗겼으므로 사업장 임금 등 단체교섭 대상이 아닌 것을 요구하면 그것은 불법이고 범죄였다. 겉으론 아무리 총력투쟁·총파업투쟁을 외쳐댔어도 결국 체포·구속 앞에서 요구를 관철할 만큼은 버틸 수가 없었다. 이 무기를 빼앗긴 노동의 투쟁을 두고서 결사투쟁이니 뭐니 파업출정식에서 결의를 다졌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철저히 무기의 그늘 아래서 무기를 빼앗긴 채 무기의 노래만 불러왔을 뿐이다. 지금까지 대로면 사업장 임단협을 넘어선, 이 나라에서 노동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노동의 투쟁은 결과가 뻔하다. 당장 7월 총력투쟁, 8월 총파업투쟁이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 총력투쟁·총파업투쟁을 이렇게 불러왔다. 뻥투쟁·뻥파업이라고. 그러면 도대체 이 나라에서 오늘 노동운동은 무엇을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무기를 빼앗겼으니 무기를 돌려달라고 해서 노동의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무기의 그늘 아래서는 기약할 수가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2012년 총력투쟁·총파업투쟁은 노동기본권 행사의 보장을 위한 노조법 재개정,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그 요구는 쟁취돼야 한다. 뻥투쟁·뻥파업이 아닌 노동의 무기로서 총력투쟁·총파업투쟁으로 전개돼야 한다. 도대체 무슨 노동의 무기가 있다고 그런단 말인가. 갑자기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못살겠다고 떨쳐 일어서는 무슨 결정적 순간도 아니고.

4. 다행히 지금까지 파업투쟁을 범죄로 처벌하던 업무방해죄의 적용이 이제는 원칙적으로 어렵게 됐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법파업이라도 더 이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1.3.17. 선고 2007도482 판결)

불법파업시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했던 기존의 판례는 변경됐다. 파업을 노동조합이 주도하지 않아도, 이번 총력투쟁, 총파업투쟁처럼 노동법 제개정 등 쟁의 목적이 정당한 것이 아닌 사항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위원장 등 노조간부가 업무방해죄로는 처벌받지 않게 됐다.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이 무슨 범죄라고 처벌해야 한단 말인가.” 이래야 하는데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직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행해져서 사용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발생시킨다면 여전히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는 것이니 전면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판결이다. 그렇지만 그 동안 이 업무방해죄로 체포·구속해서 파업투쟁을 처벌받는 일은 이제 원칙적으로 없게 됐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노동의 무기가 파업권 행사에서 보장된 것이다. 이것은 불법파업이라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던 국가권력의 기존 법집행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당장 수많은 사업장에서 이것이 나타나고 있다. MBC지부의 총파업투쟁, 여기에 연대한 KBS본부 등 언론노조 사업장의 파업투쟁, 건설노조 파업투쟁, 지난 28일 민주노총의 경고총파업투쟁 등 이전 같으면 체포와 구속으로 처벌하겠다고 공권력투입이다 뭐다 검찰·경찰·노동부가 나서 엄포를 놓고 그렇게 했겠지만 체포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몇 개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나라에서 노사관계 질서는 새로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 파업권 행사로 인한 업무방해죄 적용이 배제됨으로써 빼앗겼던 노동의 무기가 일정부분 노동자의 것으로 확보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노사관계 질서가 자본의 힘만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서 크게 억눌려 왔다는 점에서 보면 그려질 노사관계 질서의 그림은 더욱 새로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걸 사용할 의지와 사용법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 이 나라 노동운동은 그나마 되찾은 노동의 무기로 빼앗긴 노동의 무기, 노동기본권 행사의 자유부터 찾아야 할 때다. 7월 총력투쟁, 8월 총파업투쟁은 그래서 지금까지 뻥투쟁·뻥파업과는 달라야 한다. 무기를 잃고서 투쟁했을 때와 무기를 갖고서 투쟁할 때의 결과가 같다면 그것은 그 무기의 사용자를 탓할 수밖에 없다. 의지가 없던가 아니면 사용법을 모르던가. 이번 투쟁의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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