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일반 노동자들이 가장 오해하는 산재 상식은 무엇일까.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 보면 사업주가 산재 처리를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말로 타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이러한 상식을 반영한 규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산재법 제116조다. 산재법 제116조는 ‘사업주의 조력’이라는 제목하에 제1항에서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사고로 보험급여의 청구 등의 절차를 행하기 곤란하면 사업주는 이를 도와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사업주는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보험급여를 받는 데에 필요한 증명을 요구하면 그 증명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면 사업주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대한민국 굴지의 사업장인 모 자동차회사 공장의 경우 모든 근골격계질환에 대해 사업주가 요양신청서상 날인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인 어느 중공업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는 근골격계질환에 대해 ‘사업주 이견(異見)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공학전문가의 의견을 첨부해서 말이다. 대기업 사업장이고 소위 ‘강성노조’가 있다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이 이 정도인데, 노조가 없거나 중소규모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다.

산재사고로 아프거나 다칠 경우 특히 사망사안의 경우 사업주들은 모든 정보를 가진 반면 노동자나 유족들은 아는 것이 없다. 노동자가 자신의 산재사고에 대해 증명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요원한 일이다.

단순 외상사고가 아닌 근골격계질환·뇌심혈관계질환·직업성 암 등의 모든 산재사안에 있어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현실은 정말 무겁고 어렵다. 아파서 병원에서 치료하기에도 바쁘고 급한데 소위 전문적인 ‘업무기인성’은 어떻게 증명을 한단 말인가. 대리인 노무사가 선임되더라도 사업주가 현장출입을 거부하는 경우와 소속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입막음을 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방법이 없다.

참고로 공단의 실무처리 지침인 ‘요양업무처리규정’에는 사업주가 요양신청서에 날인을 거부할 경우에는 반드시 사업주의 의견을 서면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이전 요양업무처리규정이 적용됐을 때에는 사업주의 의견은 노동자에게 공개되지 않아 소위 정보의 비대칭 상황이 극대화됐다. 현행 규정(제8조2항)(2011년 12월28일 개정 규정)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일부 반영돼 사업주의 의견이나 자료가 제출될 경우 노동자에게 공개하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규정이나 현실은 위 산재법 제116조의 사업주 ‘조력의무’규정에 위반되는 내용일 뿐이다.

무엇보다 산재법 제116조의 가장 큰 문제는 벌칙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산재신청에서 조력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경우, 각종 의견이나 자료를 제출해 산재가 불승인되도록 노력하는 경우 처벌할 수 없다. 노동자가 사업주를 형법상 사문서위조 등으로 고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현실은 사업주가 초기부터 전문가를 선임해 산재가 불승인되도록 각종 자료와 내용을 만들어 제출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산재법 제116조는 유명무실한 법 규정일 뿐이다. 삭제해야 한다. 현실과 가장 동떨어져 있는 법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반문해 봐야 한다.

산재법 제116조를 삭제하지 않는다면 벌칙규정을 두고 보다 구체화된 법률로 개정해야 한다. 현행 ‘요양업무처리규정’ 별표의 ‘질병별 자료수집 목록’처럼 구체화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법 규정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업무와 노동환경 등에 대해 사업주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거부할 산재법 제129조상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거짓이나 허위자료 제출할 경우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산재법 제116조만 개정하면 노동자들이 받는 현재의 고통은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그리고 ‘이견(異見)서’라는 문서로 사실상 산재승인을 방해하는 현실 개선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삭제하든지 개정하든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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