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근로시간 단축, 사실상 좌초

지난해 7월 이후 5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에 주 40시간 제도가 적용됐으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여전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간 근무시간이 2천300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이어 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4.9% 증가한 반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1% 수준에 머무르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저하와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라는 부정적 신호들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주 12시간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시간을 포함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정작 이와 상반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변경하지 않은 채 재계의 강한 반발과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의 만류에 묻혀 근로기준법 개정 연내 추진을 포기했다.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 배제하는 법적 근거 있나

지금까지 연장근로에 휴일근로가 배제된 것은 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노동시간에 대한 법적 규율의 범위를 좁혀 왔던 점에 기인한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제56조에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명확히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휴일근로는 휴일근로수당만 지급하면 되지 주 12시간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휴일근로시간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을 뿐 1주간 근로시간 산정에 휴일근로를 배제하는 취지는 어디에도 없다. 법원도 주 40시간 초과시 휴일근로는 휴일근로이자 연장근로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대구지법 2012.1.20 선고 2011가합3576 판결)

행정해석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인정되는 주간 최대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과 주간 연장근로한도 12시간 외에 휴일근로시간 8시간 또는 16시간(주 2일이 주휴일인 경우)까지, 법상 최대 1주 60시간 내지 68시간까지 허용되는 셈인데, 과연 정부가 실근로시간을 단축할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정부의 책무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대책이란 실로 안이하다. 행정해석의 변경만으로도 쉽게 규율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그 결과 노동시간 단축의 제도개선 방향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감소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탄력근로시간제 확대나 수당 없는 연차휴가 사용촉진의 강화 등 노동시간 유연화에만 치중하게 된다. 그러나 실근로시간 단축은 고실업사회에서 국민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생활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정부의 책무를 이행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려면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낮은 기본급 체계로 인해 연장근로를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고충에 있다. 한편 경제위기시 과도한 정리해고로 심화된 시간외근로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점에도 기인한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은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생활임금’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과 근로시간 단축을 빌미로 노동유연화가 확대되지 않도록 할 법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법정기준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과 함께 장기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휴가권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실근로시간 단축이 연장근로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경기변동에 따른 긴급성, 인력확보의 곤란성이 있다면 연장근로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일정기간 일정수준 이상의 연장근로가 발생한다면 사용자에게 신규인력을 채용해야 할 적극적인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수준의 조정이 필요하더라도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차원에서의 임금보전적 급여가 확보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앞서 근로시간단축 입법과 제도를 도입했던 독일이나 프랑스를 살펴보면 정부 차원의 사회보장적 지원급여, 조기의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대한 인센티브지급뿐 아니라 경제위기로 회사가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연장근로를 통해 사용자가 얻었던 비용절감분의 재분배, 임원급의 임금삭감을 통한 평직원의 임금보장 등 다양한 임금보전방법을 활용해 온 경험이 있다.

최근 기본급 인상을 억제하는 기형적인 임금구조를 통해 연장근로수당을 포함한 각종 법정수당 산정시 통상임금을 낮춰 계산해 왔던 위법적 관행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다. 이는 연장근로를 통해 사용자가 실로 장기간 부당이득을 취해 왔다는 것인데, 임금을 정상화하고 노동자들에게 이윤을 되돌려줘야 할 사회적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사용자가 부당하게 누려 왔던 과거의 부당한 이윤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을 수용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한다면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는 그저 무지개 저편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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