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지난 14일 사무금융연맹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그간 회사측의 단체협약 일방 해지에 맞서 파업을 벌여 온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의 최근 상황을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김호열(41·사진)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장은 최근 언론노조 MBC본부와의 연대 집회 중 쓰러진 여성조합원의 이야기를 꺼내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곧 마음을 추스른 후 “승리로 모든 연대에 화답하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충정로3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9층 노조 사무실에서 김호열 지부장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회사측이 김 지부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소장이 날아들었다. 김 지부장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사측의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라며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는 만큼 흔들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얼마 못 간 첫 만남의 설레임

지부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대는 이상준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이다. 7년 전 김 지부장과 이 회장의 만남은 드라마틱했다. 이 회장은 명문대 출신에 전두환 독재시절 구로공단 위장취업한 활동가로, 이후 사무금융연맹의 전신인 보험노련에서 활동했던 노조간부로 익히 알려진 사람이었다.

당시 김 지부장이 일했던 브릿지증권은 자신들을 사업청산 위기로 내몬 영국계 투기자본에 대항해 회사를 지켜낸 투쟁력과 뚝심을 갖춘 조직이었다.

김 지부장은 “이 회장을 처음 봤을 때 자기 확신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어쩌면 지부도 이 회장도 상대를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로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 사이의 화학적 결합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2005년 7월 이 회장과 당시 전국증권산업노조는 컨소시움을 구성해 브릿지증권을 인수했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탄생한 순간이다. 양측은 ‘노사 공동경영 약정서’를 체결해 노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회사 인수 후 곧 바로 이행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더군요. 초창기라 사업도 어렵고 할테니 조금 더 지켜보려 했어요. 그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더군요.”

이 회장은 공동경영 약정서를 통해 그해 10월까지 50억원을 우리사주조합에 출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2007년 10월 지부와 이 회장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이 회장은 강남 테헤란로에 계열사인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을 비롯해 골든브릿지금융판매·골든브릿지캐피탈 등을 한곳에 모아 복합금융센터를 설립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문제는 인근의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송파지점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김 지부장은 “캐피탈과 증권은 소비계층이 다르고 변액보험 등을 동시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시너지가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부의 반발로 송파영업점은 그대로 둔채 복합금융센터가 설립됐지만 1년만에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고 문을 닫았다.

이후 회사측은 2008년 3월 이후에야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50억원 출자 약속을 지켰다.

"승리 확신 없었다면 나서지 않았다"

지부의 강경한 태도가 이 회장의 심기를 건든 것일까? 최근 들어 공동 경영은커녕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회사측은 느닷없이 노조 가입범위를 문제 삼더니 일부 조합원의 사용자성을 거론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지부가 법으로 맞서자 이번엔 단체협약을 일방해지 했다. 대신 사측은 갖가지 해고 조항을 신설한 새로운 단체협약을 도입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산하 증권업종본부가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는 통일단협 역시 휴지 조각이 됐다.

결국 지난해 2월부터 총 18차례 이어진 교섭은 최종 결렬됐고, 지부는 지난 4월 23일 파업에 돌입했다.

김 지부장은 “선배들이 투쟁으로 일궈놓은 통일단협에 따라 임금 2%(일시금 90만원 포함)를 인상하자는 것이 요구사항의 전부”라며 “이번 파업은 해고 남발을 명시한 단협 도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부는 18일 현재 파업 57일째를 맞았다. 총 조합원 106명 중 94명이 파업에 동참해 참석률이 높았다. 김 지부장은 장기파업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근로가 변수가 됐다.

“회사가 불법 대체근로라는 수단까지 시도할 줄은 몰랐습니다. 노동부가 이를 바로잡는데 이렇게 무기력할지 몰랐고요. 대체근로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지 6주가 흘렀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고 있어요. 모든 실정법이 불법 대체근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파업에 동참한 상당수의 조합원은 대다수의 젊은 여직원들이다. 현재 한 사람의 이탈도 없다는 것은 김 지부장 스스로 놀라고 있는 점 중 하나다. 김 지부장은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의 경험을 떠나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있는 파업은 조합원들의 피로감을 키우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 지회장의 확신은 흔들림이 없다.

“물론 시간은 우리에게 적입니다. 빨리 이기는 것이 최선의 해답이겠죠. 반대로 파업 장기화는 사측에게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겁니다. 대체인력으로 인한 운영 미숙과 피해가 곳곳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파업 참가 조합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김 지부장은 “젊은 조합원들이 이번 투쟁을 통해 스스로 노동자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며 “이런 깨달음 자체로도 의미있는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