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오후 서울 논현동 영풍그룹 앞에서 열린 시그네틱스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한 여성노동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현미 기자
40대 초반인 이경미(가명)씨는 삶의 절반을 반도체 후가공업체 시그네틱스에서 생산노동자로 보냈다. 90년에 입사했으니 꼬박 22년을 한 직장에 몸담은 것이다. 그런데 이씨는 최근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해고됐다. 2000년 초반부터 소사장제를 추진한 회사는 2001년 조합원들을 서울에서 안산으로 발령냈다. 이에 반대한 노동자들은 전원 징계해고됐다. 끈질긴 투쟁 끝에 2007년 노동자 65명이 대법원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회사는 소사장업체로의 발령을 거부한 조합원 28명을 또다시 해고했다. 이씨는 "2001년 해고 당시 한강다리 농성에서 단식까지 안 해 본 투쟁이 없었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논현동 영풍그룹 본사 앞 결의대회 현장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두 번째 해고를 당한 후 영풍그룹 본사 앞 결의대회는 오늘이 처음"이라며 "그동안 회사가 용역업체를 이용해 허위 집회신고를 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 해고를 당한 후 7년여 복직투쟁을 벌인 경험이 있는 이씨는 "2001년에는 지금보다 치열하게 투쟁했다"며 "이 정도 투쟁은 수월하다"고 덤덤해했다.

시그네틱스는 기존 정규직 생산노동자를 정리해고로 내쫓고, 변형된 사내하청의 일종인 소사장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7월 정규직 28명을 '긴박한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하면서 시그네틱스에는 정규직 생산노동자가 한 명도 없는 전자업체가 됐다.

시그네틱스는 재계 42위인 영풍그룹의 계열사다. 시그네틱스는 64년 설립된 국내 최초 반도체 조립회사로 생산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20년이 넘는다. 이씨는 "우리의 정년은 57세"라며 "정년까지 많이 남았으니 현장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경기지역지부(지부장 이기만)는 이날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에는 금속노조 조합원과 시그네틱스 노동자,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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