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 여성본부장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성노동자들이 안고 살아가는 난제 중 하나다. 육아와 보육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결과 여성노동자들이 고용단절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회사법·눈치법’이 여성노동자들을 일터 밖으로 내몰고 있어요.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산전후휴가 활용률이 35% 수준에 불과합니다. 재취업 문턱은 높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 가능한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뿐이에요.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라는 통계가 이러한 현실을 대변합니다. 늪에 빠지지 않으려는 여성은 자녀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으려고 하죠.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입니다.”

"고용정책-보육정책 맞물려 돌아야"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순희(54·사진) 한국노총 여성본부장은 가장 심각한 여성노동 문제로 육아와 보육을 꼽았다. 보육정책과 여성고용정책이 상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육정책은 일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 위주로 만들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일하는 여성은 역차별을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부부 소득에 따라 보육비를 지원해 주다 보니 맞벌이 여성에게는 보육비 지원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보육정책의 기본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김 본부장은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을 통한 ‘보육의 사회화’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전체 보육시설 가운데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은 5%밖에 안 된다. 직장여성 10명 중 7명이 국·공립 시설을 원한다는 통계 결과에 비춰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고용정책과 보육정책은 맞물려 돌아야 한다”며 “정부의 예산이 보육의 사회화에 쓰이게끔 촉구하고 유인하는 것이 노동계, 특히 한국노총 여성본부의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노조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노동조합 하면 아직도‘전투적’이라거나 ‘남성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 사회 어느 집단보다 남성 위주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조다.

“상당수 사업장 노조에서 단체교섭위원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노조 상근간부도 거의 남성이죠. 노조 내 각종 위원회나 주요 집행부서에도 남성 간부들이 주로 배치됩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일까요?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기회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노총은 규약에 따라 대의원 배정시 ‘30% 여성 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다. 여성 조합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한국노총의 여성 대의원 비중은 12.9%에 머물러 있다. 사정이 이러니 여성노동 문제는 노조 안에서도 주변부 의제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노총 내 여성본부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노총은 2000년대 초반 여성본부를 폐지했다가 2008년에야 재설립했다. 김 본부장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여성본부를 책임지고 있다.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지부의 여성간부들을 만나면 여성사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여성간부 할당제를 활용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노총 여성본부는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요. 여러 여건을 감안해야 하니까요. 일종의 딜레마죠.”

"노동운동 28년, 후회 없이 왔다"

김 본부장은 84년 화학노련 교육부장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노동행정을 전공한 것이 인연이 돼 한국노총에 발을 들였다. 88년부터 한국노총 사무총국에서 일하며 청년부장·노사대책부장·책임연구원·교육국장·정책국장 등을 두루 거쳤다. 노조간부로서 전문성을 높이고 싶어 노조활동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박사과정에 도전했고, 그로부터 11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냈다.

“스물일곱에 노동운동을 시작해 쉼 없이 달려온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 지난 경험이 여성본부장을 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 바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직면한 여성 노동자 문제인데요. 그 일을 하는 자리에 있다는 걸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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