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연초부터 불안하던 세계경제가 스페인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계기로 다시 요동치고 있다.

스페인은 이미 국가부도 사태가 난 아일랜드나 그리스와는 경제규모나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상징성에서 질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스페인 경제위기가 심각해질 경우 유럽연합 해체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위기는 한 국가의 위기가 아니라 2008년과 같은 세계 경제위기의 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는 한국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 증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 중 28%는 유럽연합 자본이다. 또한 고용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유럽연합 기업의 직접투자는 전체 외국인투자의 40%나 된다. 이들 유럽계 자본이 불안해지면 한국의 경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큰 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 정책을 바꿔 내야 할 것이다. 국내외 시장 규제·노동권 보호·공공성 확대 등 여러 수준의 대안들이 이미 이야기됐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정책들을 추진해 나갈 주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언제까지 진보정권을 기다릴 수만도 없다.

결국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우선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노동조합 임금·단체협상 투쟁에서부터 경제위기에 맞선 싸움을 해야 한다. 경제위기에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이 현재 요구하고 있는 임금과 노동조건 관련 요구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위기가 더 악화되는 것을 노동조합이 막을 수는 있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소비. 현재 유럽위기는 금융위기에 대해 한편으로 금융자본에 대해 천문학적 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에 대해서는 긴축으로 대응한 결과다.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인 것은 사실이나, 유럽이 특히나 더 심각하게 위기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긴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이 임금을 양보하고, 구조조정을 수용해서 얻을 것은 더 큰 불황밖에 없다. 소비도 줄고, 경제성장도 더 떨어질 것이다. 수출재벌들이야 비용경쟁력으로 돈을 더 벌겠지만, 노동자들은 죽는다. 재벌은 성장할 수 있으나 국민경제는 파탄난다. 노동조합이 재벌들과 이들의 하청업체들에 양보하는 순간 나라 전체가 수렁에 빠진다. 2008~2009년 상황을 기억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민주노조가 임단투에서 성과를 따내는 것이 바로 소비 측면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책 중 하나다.

둘째, 국부유출. 경제위기가 오면 외투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자산을 이동시킨다. 한국지엠은 2008~2009년에 파생상품 손실을 본 본사에 2조원 넘는 돈을 보냈다. 르노삼성 역시 르노-닛산 그룹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자본을 유출했다. 발레오·보쉬·델파이 등 국적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외투기업이 비슷했다.

한국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생산될 물량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국내에 분배해야 할 부가가치를 자신들의 해외 계열사에 묶어 둔다. 간접적인 국부유출이다.

노동조합이 임단투 과정에서 사측의 경영상황을 감시하고, 물량 이전을 막아 내지 못하면 외투기업과 재벌은 마음대로 국내 자산을 이동시킬 것이다. 자본에게는 득이지만 국민경제에는 큰 손해다.

셋째, 재벌. 이명박 정부가 재벌을 지원하기 위해 경제위기 시기에 썼던 대표적인 정책이 고환율 정책이었다. 환율 조정을 통해 재벌 수출은 돕고, 노동자들의 실질구매력은 감소시킨 것이었다. 그 결과 재벌은 경제위기 기간에 창사 이래 최고의 이익을 얻었고, 노동자들은 98년 이후 최악의 실질임금 감소를 겪었다. 이번 위기에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구매력)을 양보한다면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6월 말이나 7월 초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는 화물연대 투쟁은 수출 대기업을 위한 정부의 노동자 희생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대표적 투쟁이다. 화물연대는 기름값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데, 환율 정책으로 인한 대표적 가격인상 품목이 바로 기름이었다. 화물노동자들은 기름값 인상으로 인해 수입이 급감한 반면, 수출 대기업과 그들의 물류 계열사들은 정부의 물류비 인하 정책으로 큰 이득을 얻었다.

유럽에서 경제위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나라들 대부분은 2000년대에 노동조합이 임금인상·복지확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금융시장에서의 부채소비·자산투자를 통한 소득증가에 취해 노동조합이 실물경제에서 임금인상과 튼튼한 산업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 탓이 크다.

2012년 6월, 한국의 민주노조는 더욱 당당하게 임단투에 나서야 한다. 임단투 승리가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위기 대처법 중 하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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