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대 총선이 끝나고 국회가 개원한 지도 열흘이 지났다. 그렇지만 총선의 내홍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국회는 여전히 총선 뒤처리를 두고 갈등하고 있다. 그중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의원들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당원 제명절차를 시작했으며, 국회도 제명이나 자격정지를 두고 논쟁 중이다. 이 문제는 물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의 비민주성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종북논쟁’이 자리하고 있어, 여권의 공격은 민주통합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정몽준 의원조차 ‘사상의 자유’를 들어 통합진보당 두 의원에 대한 제명에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세력을 둘러싼 권력분쟁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통합당도 당 대표 경선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총선 이후 정국에서 주요 세 정당이 모두 당내 분쟁에 휩싸인 것이다. 이러한 내홍들은 한국 정당체제의 재편과 관련되며, 특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합정치는 민주화 이후 형성돼 온 정당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직후 개발독재 정당체제를 계승한 카르텔 정당체제는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균열이 생겼다. 곧 반공 보수주의 일색의 정당체제에서 햇볕정책 등으로 대북 온건노선이 형성됐고, 경제정책적으로도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시장질서를 옹호하는 전통적 보수와 더 자유주의적인 시장질서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보수가 분열됐다. 그 후 2000년대 들어와서는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시장경제주의를 지향하는 두 보수세력에 대응해 사회경제주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따라서 전통적 보수와 자유주의 보수 및 사회경제주의적 진보가 대립하는 삼각구도가 형성됐다.

그런데 19대 총선에서는 두 보수가 연합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보수와 사회경제주의 진보가 연합했다. 독재-민주의 전통적 갈등구도를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새로운 보수-진보의 구도로 볼 때 이러한 연합정치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현상이다. 그 첫 번째 원인은 분단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분단 모순을 축으로 할 때 전통적 보수가 반공에 토대를 둔다면, 자유주의 보수와 사회경제주의 진보는 대북 온건정책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통합민주당의 태생적 성격도 중요한 원인이다. 자유주의 보수에서 이탈한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통합이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연합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왜 통합했는가. 그것은 아직 계급·계층 균열이 약한 우리나라 정당 이념구도에서 민주노동당이 중도화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내 계파갈등까지 본다면 계급·계층 균열을 더 대변하는 비당권파의 힘이 당권파를 제압할 수 없는 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진보신당이 탈당한 것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일부가 다시 민주노동당과 통합함으로써 선거연합 구성에서 이 문제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의회 내 세력 강화를 위해 국민참여당과 전략적 통합을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단일정당 창당 문제는 전략 선택의 수준이 아니라 이념의 변화와 밀접히 연결된다.

종북주의 문제가 이번 당내 갈등을 통해 해결된다면, 이념적으로 갈등의 소지는 거의 사라진다. 진보신당에서 이탈한 통합파가 다시 원래의 입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이 현재와 같은 중도화된 노선을 계속 지향한다면 자유주의적 보수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의회에 진출한 제도권 정당들의 체제는 보수 일색에서 전통적 보수와 자유주의 보수가 대립하는 구도가 될 것이며, 그것은 더 나아가 보수주의 카르텔 정당체제로까지 다시 악화될 수 있다. 그 안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더 활성화하기 위한 사회정책을 도입하는 문제와 대북정책을 둔 갈등만 존재할 뿐이다.

진보진영에게 가혹한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시련과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것처럼 보수주의 카르텔 정당체제의 재등장은 진정한 진보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역사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진보진영의 뼈아픈 성찰과 재기 의지가 관건이다. ‘역사의 도구’를 활용할 수 없다면, 그때 위기는 종말로 이어질 것이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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