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영리병원 도입 저지와 산별중앙교섭 성사 등 눈앞에 놓인 과제와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새롭게 출발하자는 마음으로 삭발을 결의했습니다. 비록 하나의 산별노조 위원장일 뿐이지만 이런 마음이 현장에서 투쟁을 준비하는 조합원들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시동을 건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에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달 7일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영리병원 저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서 유지현(44·사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삭발을 강행했다. 시기가 이르다는 주위의 만류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유 위원장은 “영리병원 도입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 그리고 보건의료산업 산별중앙교섭 정상화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영리병원 들어서면 건강보험 무너진다”

- 노조가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무너진다.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주식회사병원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의료비 폭등은 물론이고 의료양극화·민간보험 활성화·중소병원 몰락·국민건강권 붕괴 등 의료 대재앙이 벌어질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병원비 걱정 없는 무상의료 실현을 꿈꾸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망도 물거품이 된다.”

- 정부는 이달 안에 영리병원 도입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올해 11월 인천 송도에 첫 영리병원을 설립한다는 계획인데.

“1호 영리병원 설립 여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가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급속한 영리화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것이 올해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는 배경에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이 도사리고 있다. 의료를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 재벌의 탐욕을 허용하는 사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회로 갈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유 위원장은 “인천시에서 송도국제병원을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얘기하는 것처럼 국제병원 도입 목적이 의료편의를 개선해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라면 지금 있는 외국인 전용 의료센터를 확대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굳이 인천 송도에 대규모 병상을 보유한 국제병원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노조는 인천송도국제병원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 23조를 삭제하는 법 개정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정당과 시민들까지 나설 수 있는 범국민적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영리병원 도입 저지투쟁이 2008년 의료민영화 저지투쟁과 비교해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2008년 당시에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항쟁과 함께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의료영리화는 국민건강권 문제로 서로 연결돼 있었다. 영리병원 문제가 지금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는 정부와 여당에서 여러 차례 시도한 영리병원 도입이 번번이 실패함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안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틈을 노리는 것 같다.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최근 영리병원 도입이 가시화되고 이를 막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산별중앙교섭 반드시 성사될 것”

- 올해 초 노조 6기 집행부가 출범할 때부터 산별중앙교섭 정상화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올해 산별중앙교섭을 어떻게 전망하나.

“2년간 중단된 산별교섭을 정상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산별중앙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조의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노조의 진정성을 수용하는 사측이 늘어나면서 참가병원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올해 산별교섭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노조가 산별교섭 성사 없이는 현장교섭도 없다는 기조를 확고히 한 상태에서 산별교섭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노조가 제시한 요구안도 개별기업을 뛰어넘는 주요한 과제들과 사용자측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공동정책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 산별중앙교섭 불참병원에 대한 차별화 전략을 여러 번 언급했는데.

“참가병원에 대해서는 대화로, 불참병원에 대해서는 투쟁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11일부터 2박3일간 산별교섭 참가 촉구를 위해 병원장실 앞 농성투쟁을 전개한다. 산별교섭 참가병원은 제외했다. 불참병원은 이달 19일부터 27일까지 지역본부별 집중순회투쟁의 대상이 되고 28일 총력투쟁 때 집중타격의 대상이 된다. 병원측에서도 부담을 느낄 것이다.”

유 위원장은 "산별중앙교섭 불참병원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노조는 올해 산별교섭에서 통상임금 범위를 다루기로 방침을 정했다. 교섭 불참병원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노조는 병원측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하자는 건데, 교섭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병원이 직접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노조가 요청한 대화에 나오지 않는다면 투쟁할 수밖에 없다.”

- 산별중앙교섭 성사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반응은.

“조합원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력부족과 인력수급 문제다. 개별 노사관계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병원노동자에게 가장 큰 희망이 사직서를 쓰는 것이다. 비극이다. 보건의료인력특별법 제정을 다루는 산별교섭 요구안을 마련했는데, 산별교섭이 성사되면 인력부족 문제를 정책적으로 풀 가능성이 커진다. 병원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직원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건물신축·증축·리모델링 등 외형적 성장과 병상 늘리기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다. 산별교섭이 열리면 병원 간 경쟁을 지양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 확립·병상총량제 실시와 같은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다. 조합원들의 숨통도 트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과 공감하고 있다.”

“노동정치·노동중심성 강화가 답이다”

- 올해 상반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진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노조가 내걸었던 ‘나순자를 국회로’라는 구호는 보건의료 인력부족 문제 해결과 의료공급체계 혁신, 무상의료 실현 등 조합원의 절실한 요구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구호였다. 조합원들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조합원의 집단 당원가입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었다. 통합진보당의 부실한 선거관리시스템 때문에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실험이었다. 다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노동중심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교훈으로 남았다. 당에 노동중심성을 확고히 하고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았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현장조직이 똑바로 서고,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고 진보정치를 견인해 나가면 당이 점차 자리를 잡아 갈 것이다.”

유 위원장은 지난 8일 민주노총이 구성하기로 의결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노총 특별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는 “총선에서 우리 후보를 낸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을 통해 현장에서 가능성을 봤다”며 “진보정치를 견인해 나가는 실험을 했던 산별노조로서 그동안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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