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미영 기자

드르륵드르륵. 쾅쾅!

지난 9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담장 너머 적막한 조선소와 달리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천막농성장이 있는 공장 정문 앞은 소란스러웠다. 농성장 바로 뒤편에서 드릴로 땅을 파고 망치로 쇳덩이를 두드리는 통에 차해도(53·사진) 지회장과의 인터뷰는 시작하자마자 중단됐다.

“천막농성이 시작되니까 회사가 정문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다고 저러네요. 조선소 안에도 그래요. 김주익 열사가 생을 마감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을 버텼던 85호기 크레인은 지난해 5억원에 고철로 팔렸습니다. 나머지 크레인도 접근통로를 모두 막아 놓았어요. 회사가 법원에 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을 내서 민주노총이든 금속노조든 외부인은 아예 회사출입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는 부산시가 조성한 2.3미터 높이의 공장 주변 테마담장에 콘크리트를 덧대어 6미터로 높이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희망버스가 준 용기, 노사 힘 균형으로 못 이어져”

차 지회장은 지난해 6월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들이 처음 한진중 담장을 넘어 크레인으로 왔을 때의 벅찬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해 6월 전 집행부가 파업철회를 선언하고 6월27일 법원의 행정대집행으로 모두 회사 밖으로 쫓겨났어요. 조합원 80%가 이탈한 상태였죠. 200여명만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는데 2003년 기억이 나더라고요. 또 누군가 목매고 떠나는 것 아닌가 하는 최악의 상황을 걱정했죠. 그때 희망버스가 용기를 줬어요. 희망을 이어 갈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준 거죠.”

차 지회장은 “희망버스가 한진중 정리해고를 사회 문제로 만들고 정치권이 조남호 회장을 압박해 정리해고자 1년 뒤 재고용 노사합의서를 체결할 수 있었지만 노사 간 힘의 균형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 1년 뒤 재취업이라는 애매한 약속을 받은 정리해고자들도, “해고자는 2천만원 생계비를 지원받는데 우리는 10원짜리 한 장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조합원들도, 회사도 모두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지회는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회는 조합원 결속에 실패했고, 이는 복수노조 가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됐다.

“함께 용역놀이 했던 아이들, 아버지 노조 다르면 말도 안 섞어”

올해 1월 등장한 복수노조는 30년지기 동료들을 갈라 놓고, 그들의 아이들도 갈라 놓았다. 차 지회장에 따르면 경남 김해에 한진중 사원아파트 400세대가 있다. 주민의 80%가 현재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아버지가 속한 노조가 다르면 말도 하지 않는 서먹한 관계가 됐다.

“복수노조는 인간성을 황폐화시켜요. 형님·아우 하면서 30년을 지낸 사람들끼리 이제 상갓집도 안 가고 같은 부서 안에서 회식도 따로따로 해요. 회사 내 모든 친목회가 깨졌어요.”

일감이 없는 한진중에서 소속 노조는 휴업 복귀날짜를 앞당기거나 생계비지원 대출금 400만원을 우선 받을 수 있는 사다리 노릇을 한다. 회사는 공공연하게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면 혜택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차 지회장은 전했다.

“천막농성, 마지막 저항될까 두렵지만…”

차 지회장 역시 복수노조가 설립되면서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짜증 같은 감정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초기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한진중 심리치료센터인 ‘사랑방’에서 8주간 치료를 받았다.

“지회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노조간부들도 대의원도 모두 휴업자예요. 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총회도 못 열어요. 일상적인 노조활동이 거의 중단됐습니다. 기업별노조는 노사가 힘을 합쳐서 정상화하자고 말하지만 회사가 신규수주할 의지가 없어요. 75년 역사의 영도조선소를 문닫고 아파트를 만들어 땅장사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도 도무지 저항할 방법이 없어요. 마지막 선택이 천막농성이었습니다.”

그래도 차 지회장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조합원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별노조로 간 조합원 일부가 금속노조로 되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차 지회장은 조합원들과 함께 뚫고 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가져다준 용기라는 밑천이 아직도 두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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