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법률원

2010년 여름 사법연수원 노동법학회에서 프랑스· 독일·스위스의 노동 관련 기관을 방문했을 때 파리의 판사노조(Syndicate de la Magistrature)를 찾은 적이 있다. 판사 경력 30년의 오디 바라(Odile Barral)씨는 68년 6월,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당시 동료 조합원이 “내가 우체부가 된 것 같다”며 어색해했던 적이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선배 판사 몇몇은 “어디 판사가 노동자냐”고 성난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고 한다.

프랑스 '판사노조'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지금은 전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가 낭트에서 발생한 18세 소녀 살인사건을 강간범 등에 대한 누범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법부의 잘못으로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판사들이 “수년간 제대로 된 인력충원도 없었고,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은 행정부가 사법부에 책임을 떠넘긴다”며 파업에 나섰다. 파업의 주체는 내가 만났던 판사노조가 아닌 다른 노조-'Union syndicale des magistrats'라는 3개의 판사노조 중 최대 조직-였지만 “지금은 노동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던 그 여유 있어 보였던 중년의 여성 판사가 떠올랐다.

지금 이국의 이색적인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길게 꺼낸 것은 “중요 재판 이외에 재판은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프랑스 판사와 달리 “더 이상 기사 못 쓰겠다”고 말하는 우리나라 언론노동자들의 처지가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100일을 넘은 방송국·통신사·신문사의 파업이 정말 그렇다.

검사는 '다 같이 일하지 않은 죄'를 물어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국방송·YTN도 노조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해 놓은 상태다. 이 고소를 받아 언제 또 검사가 이들 노조간부의 인신구속이 필요하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문화방송·연합뉴스는 쟁위행위금지가처분을 제기하며 법원을 향해 “저들에게 일할 의무를 부과해 주십시오”라며 사실상 강제노동을 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거기에다 손해배상청구도 하고 조합 간부들의 개인재산까지 가압류한 상태다.

헌법 제33조제1항의 단체행동권이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로 질식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17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써 업무방해의 ‘위력’의 인정요건 두 가지-사용자의 예측불가능성, 사업운영의 막대한 손해-를 설시하기도 하고, 보도자료를 내서 위 판결의 의의를 "위법한 쟁의행위인 파업의 경우 만연히 업무방해죄로 처벌해 오던 종래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검찰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구속시키는 데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회사는 노무제공 거부의 금지를 구하는 사실상 강제노동을 구하는 쟁의행위금지가처분을 버젓이 법원에 제기하고 있다. 대법원은 “노사의 이해대립은 노사대응의 원칙에 입각해 자주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결하고 있지만, 노사가 대립하는 경기장의 현실은 공정하지 않다. “링에 오르려면 구속을 각오하라”고 빤히 쳐다보는 심판을 보고서 어느 선수가 링에 오르려 하겠는가.

근본적으로 '공정언론'은 언론노동자들에게는 중대한 근로조건의 문제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4대강 방송 불허에 비해 다소 사소해 보이는 일 하나를 들어보자. 대통령의 친구가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 공판에서 검찰수사를 받을 때와는 다른 주장을 했다. 어느 법조기자는 이를 설명하며 “000씨가 ~라고 말해 논란이 된다”고 첫 문장을 썼다. 그런데 그 기사는 어느새 “000씨가 ~라고 말했다”로 바뀌어져 있었다. 검찰 수사시에 했던 말은 아예 소개되지도 않았다.

작은 일이라고 했지만 이게 정말 작은 일일까. 판결문의 문장 몇 개가 부당한 이유로 그냥 바뀌어져 버리면, 그게 작은 일일까. 프랑스 판사들의 파업 계기는 대통령의 사법부 비난 발언이었고, 우리 언론노동자들은 기사 작성이라는 근로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 시작이 됐다. 그래도 과문한 탓인지 구속된 프랑스 판사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공정언론’은 주장 자체의 정당성을 떠나 쟁의행위의 목적이 애초에 될 수 없어 파업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많은 쟁송에서 듣고 있다. 언론이라는 공기(空氣)가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내겐 공해(公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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