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0년이 훨씬 지났다. 산별노조운동이 본격 전개된 지가 벌써 이렇다. 보건의료노조·금속노조·금융노조·공공운수노조 등 많은 노동조합이 기업별노조체제에서 산별노조체제로 조직전환을 이뤄 냈다. 이제 산별노조는 노동조합의 당연한 조직형태가 됐다. 더 이상 이 나라 노동운동의 조직적 과제라고 말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제 기업별노조는 노동조합의 낡은 조직형태가 돼 버렸다. 교육과 선전홍보 없이도 산별노조는 노동조합의 새로운 조직형태라고 이 나라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바야흐로 산별의 시대가 됐다.

2. 이제 노동조합은 과거 기업별노조보다 그 규모가 최소 몇 배에서 몇십 배에 이른다. 산별노조는 과거 어떠한 기업별노조보다 많은 조합원을 두고 있다. 조합비 규모는 과거 연맹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노동조합으로서의 권한도 집중됐다. 교섭권과 체결권·쟁의권 등 권한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게 산별전환 논의 당시부터 산별노조의 장점으로 선전됐다. 규약으로 당연히 산별노조의 권한이 됐다. 이제 규약상으로는 산별노조가 위임하지 않으면 사업장의 교섭과 쟁의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누구도, 어떠한 사업장조직이라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산별노조의 권한으로 인식됐다. 이처럼 산별노조의 조직은 확대돼 왔고, 산별노조의 권한은 집중돼 왔다. 지금도 산별노조는 날마다 조직이 확대되고 있으며, 날마다 권한은 강해지고 있다.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은 지난 십여년간 산별노조로 달려왔고, 지금도 산별노조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과 권한은 산별노조로 집중돼 왔다.

3. 그런데 지금 노조운동은 위기라고 한다. 노동조합은 산별노조로서 조직과 권한은 강해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노조운동은 위기라고 난리다. 노동조합의 조직과 권한을 집중해야 자본에 맞서 조합원 권리를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방법이 산별노조라고 해서 기업별노조마다 조직형태변경을 결의해서 산별노조체제로 전환했다. 그랬으니, 과거 산별연맹보다 수십 배 내지 수백 배의 조합비가 집중되고 교섭권과 쟁의권을 갖게 되는 등 권한이 막강해졌다. 그랬으니 산별노조체제에서는 이 나라 노조운동은 산별노조로 전환되기 전보다 수십 배 내지 수백 배로 강력하게 전개됐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조직과 권한은 분명히 집중됐는데 운동은 그렇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지금 노조운동의 위기는 산별노조 운동을 붙잡고서 물을 수밖에 없다. 지난 십여년간 이 나라 노조운동은 산별노조로 달려왔고 그래서 산별노조를 쟁취해 왔다. 그 산별노조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조합원과 노동자의 권리확보 투쟁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지금 노조운동이 위기라면 그것은 산별노조운동에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4. 과거 기업별노조체제에서 노조운동의 조직은 기업별노조·산별연맹·총연맹의 체계였다. 산별노조체제에서는 산별노조·총연맹의 체계로 구축되고 있다. 과거 산별연맹은 산별단위에서 노조운동을 주도하는 조직체였다. 사업장 조합원의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주된 사업으로 전개하는 기업별노조와는 달리 산별연맹은 산별단위 노동운동단체로서 각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전개되는 투쟁을 산별 전체, 나아가 이 나라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노동법 개정처럼 노동자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산별 전체 조합원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투쟁을 결의해 내고 조직했다. 과거 산별 단위의 총파업투쟁·총력투쟁은 산별연맹이 주도해서 전개될 수 있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전개됐던 구조조정 반대투쟁, 2000년대 초반에 전개된 주 40시간 쟁취투쟁 등이 이 산별연맹체제에서 전개됐다. 이 나라에서 전개돼 온 산별노조운동은 이 산별연맹이 주도해서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 지부 등으로 조직변경해서 산별노조체제로 전환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서 산별연맹은 해산됐다. 결국 과거 기업별노조체제에서 기업별노조·산별연맹·총연맹의 노조운동체계는 기업별노조의 조직형태변경으로 산별노조·총연맹의 체계로 전환되면서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통합과 산별연맹의 해소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조직통합은 주로 조직형태변경 결의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존 기업별노조는 산별노조의 지부·지회 등 하부조직으로 조직이 변경됐다. 그건 기업별노조의 조직통합의 방식이었고 실제로 그것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기업별노조의 주된 사업이었던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은 통합된 노동조합체제에서는 산별차원의 공통적 교섭사항과 사업장별 교섭사항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산별교섭과 보충교섭으로 나뉘었고 이런 것이 산별노조의 주된 사업이 됐다. 기업별노조에서는 협약안을 마련하고, 교섭을 진행하고, 조직과 쟁의를 담당하고, 조합원을 교육하고 선전·홍보하는 것으로 조직부서가 나뉘어져 집행됐는데 그것은 산별노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과 쟁의를 위한 부서체계였다. 부서체계 외에도 산별노조의 본부·지부 등 하부조직체계도 교섭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세워졌다. 산별연맹 시절과 동일한 명칭의 조직부서라도 그 수행업무는 전혀 달랐다. 교섭이라는 사업목적, 특히 산별교섭 쟁취라는 목표에 집중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별교섭체계 확보가 그 교섭 상대방인 사용자들의 소극적 태도로 지연되거나 조합원권리 확보를 위한 중요한 내용이 담기지 못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들은 그 교섭의 체계·내용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산별노조운동은 이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산별노조의 기업노조화. 사업에서 협약체결을 위한 교섭에 집중하면서 산별교섭구조로 매몰돼 왔다.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체계로의 조직전환에 의한 산별노조운동은 기업별노조의 조직통합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와 같은 현상은 고착돼 가고 있다. 과거 산별연맹이 지니고 있었던 운동성은 산별노조체계에서 어떠한 조직체계와 사업체계로 보존된 것일까. 현상적으로 드러난 바로는 산별노조에서 그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산별노조는 교섭을 주된 사업으로 수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산별교섭구조 확립이 자신의 존재이유가 돼 버렸다. 산별연맹이 갖지 못한 조직력과 교섭권·쟁의권 등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산별연맹과 다름없는 혹은 산별연맹보다 못한 투쟁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이 나라 노동운동의 역동성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세계적으로 손꼽혔다는 노조운동의 전투성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노조운동의 위기는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5.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파괴적인 투쟁에 의하지 않고서는 전진할 수 없다. 노동기본권은 온통 제한되고 금지돼서 노동자의 기본권으로서 그 행사가 보장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노동자권리는 자본과 권력이 주는 것 외에 노동자의 투쟁으로 확보해 나가기 어렵다. 사업장에서의 임금 등 단체협약 수준에서, 그것도 하찮은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가 그 단체협약이라는 게 조합원과 조합활동의 권리장전으로서 제대로 구실을 하고 있지도 못하다. 근로기준법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도 부지기수이고, 취업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것을 갖다 놓은 것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실제로 조합원 권리와 조합활동을 보장하는 조항은 몇 개에 불과한 게 대부분이다. 이러니 노동조합은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전횡으로부터, 불법과 부당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는 고충처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주 40시간 노동제가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그러면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로 이보다 단축된 노동제를 요구해서 교섭해서 단체협약으로 소정근로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이러한 요구도 교섭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단체협약 체결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러한 노동현실에서는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미친놈이 되고 만다. 주 40시간 노동제는 고사하고 상시적인 연장근로에 위법한 휴일근로까지 주 60시간·70시간의 노동제가 대표적인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대기업 사업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노동조합이 고충처리자로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요구하고 투쟁해서 쟁취하지 못하니 확보된 단체협약수준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러니 구조조정·징계 등 구체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 그것이 조합원을 지켜 주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때 할 수 있는 게 천막농성 항의투쟁이고 그것이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노조활동이 돼 버렸다. 온통 엉망진창이다. 지금 이 나라 노조운동은 무기를 위해서 투쟁해야 할 때다. 제한·금지되지 않는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받기 위해서, 조합원과 노동자를 지켜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파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투쟁해 나가야 할 때다. 산별노조운동은 이것을 주된 사업목적으로 해서 전개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산별노조의 사업과 조직에서 무엇이 그렇게 전개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지 살펴서 새롭게 사업과 조직을 세워야 한다. 10년 동안 그래왔던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교섭대상과 교섭구조가 문제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산별노조의 조직체계·사업체계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지금 노조운동의 위기는 이 나라 노조운동이 바라 마지않았던 산별의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주목하면 해답은 단순하다. 지나간 10년이 앞으로 100년이 돼서는 안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