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구미지사)

지난해 7월1일 사업장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기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드디어 복수노조 시대가 왔다. 노동계 숙원사업이 이뤄졌다.” 양대 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고용노동부조차 노동자들의 권리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달 뒤면 복수노조 시대 만 1년이 됩니다. 그즈음 각계각층에서도 복수노조 시행 1년에 대한 평가를 할 겁니다. 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대구의 어느 사업장 얘기입니다. 한 노동자가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설립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얼마나 당하고 살았기에 이리도 급했던 것인지. 아마도 법 시행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노조를 보란 듯이 띄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존 노조가 사장에게 해고를 요구합니다. 기존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니온숍 규정에 의거해서입니다. 그 조합원은 즉시 해고됐고, 다시는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사업장에 돌아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 조합원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대구에 있는 또 다른 사업장 얘기입니다. 사장이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상급단체 탈퇴를 종용합니다. 상급단체를 탈퇴하지 않을 경우 정년연장을 시켜 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합니다. 상급단체 탈퇴 안건은 3차례나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결국 통과됐습니다. 상급단체 탈퇴에 반대했던 조합원은 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그 탈퇴 조합원의 정년이 올해 4월입니다. 회사는 기존 노조와 체결된 단체협약에 의거해 기존 노조와 노사협의를 거쳐 정년연장을 결정합니다. 정년대상자 4명 중 3명의 정년이 연장되고 그 탈퇴 조합원만 정년연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탈퇴 조합원은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기 이전까지 회사로부터 표창장을 두 번이나 받았던 모범사원이었습니다. 그 조합원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구미에 반도체 사업장이 있습니다. 타임오프 시행 관련 전국 최초 파업 사업장으로도 알려져 있고, 복수노조가 생긴 전국 최초 사업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새벽에 용역경비를 동원해 여성기숙사에 난입해 인권유린을 했던 사업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관리자 처우개선안’이라는 회사측 문건을 통해 연간 100억원의 관리자 인건비 인상 계획을 세우고 그 재원을 파업복귀자 198명을 전원 퇴사처리해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운 사업장이라는 사실도 있습니다. ‘출구전략 로드맵’이라는 회사측 문건을 통해 기존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신설 노조를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핵심관련자에게 7억원의 노조설립 활동비를 지급한 정황이 노동부·검찰 합동 압수수색을 통해 밝혀진 사업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정리해고의 근거가 되던 회사측 경영컨설팅 보고서 내용이 전체 직원 800명 중 644명을 정리해고해야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보고서였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았고, 회사가 어렵다며 부분휴업을 실시하면서도 휴업기간 중 어느 부서는 잔업을 하고 또 어느 부서는 휴일 특근을 해야 할 만큼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통보하던 그 시점에도 4차례나 조직 확대개편을 하고, 130여명을 승진·승급하고, 관리자 1인당 평균 900만원의 연봉인상이 진행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경쟁업체 생산기지가 홍수피해로 침수돼 인터넷 여기저기서 연일 주문 폭주 뉴스가 올라오고 회사 관계자가 연일 생산물량 증가로 기뻐하며 인터뷰하는 기사가 나온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종 정리해고된 75명 전원이 기존 노조 조합원이고, 이들의 인사고과가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철회한 시점은 지난달 31일 노동위원회 심문회의가 있던 바로 하루 전날입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정리해고만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7억원의 노조설립 활동비가 지급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제2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강제로 적용한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정리해고 철회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 75명의 정리해고 조합원을 포함한 기존 노조 조합원 180여명은 실체조차 없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에 의해 연간 100억원의 인건비 삭감을 적용받는 처지에 있지요. 단체협약에 의한 3조3교대 근무를 본인 동의는 물론 소속 노조의 동의도 없이 2조2교대로 근무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뒤늦게 설립된 제2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의해서입니다. 이들 조합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일까요.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기뻐했을 이들 모든 노동자들에게 복수노조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구미 사업장의 조합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두고두고 기억납니다.

“세상은 비겁해. 나쁜 건 넌데, 아픈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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