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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경기지부 북콘서트 '사람 꽃을 만나다'] 1천포기 배추가 1천권의 책으로 피어나다
▲ 김미영 기자

북콘서트가 대세다. 요즘 여의도에서 북콘서트를 한 번 안 열어 본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래도 이런 북콘서트는 처음 봤다. 사회자도 출연자도 모두 해고자다. 심지어 게스트로 출연해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밴드마저 해고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에서 '사람 꽃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북콘서트 이야기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민씨가 "맨날 집회 사회만 보다가 콘서트 사회를 보려니 어색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게스트로 나온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김양순씨는 "10년간 두 번 정리해고 당했다"며 "오랫동안 투쟁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삐져 나온 옆구리살 관리 겸 동네 주민센터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다"고 떨린 목소리로 근황을 소개한다. 무대경험이 많은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 줄여서 콜밴은 해고자 심정을 담은 노래로 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해고자들이 북콘서트를 연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해 12월 담근 '희망김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희망버스를 다녀온 어떤 이가 술김에 '희망김장 1천포기를 담가 전국의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나눠 먹으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 게 덜컥 현실이 됐다.

평택 농민회가 제공한 배추 1천포기와 무 400개를 밭에서 뽑는 것부터 시작한 '희망김장' 이야기는 질기게 싸우는 노동자의 사연과 함께 얼마 전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됐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희망김장 기획단이 함께 펴낸 '사람 꽃을 만나다'는 파카한일유압·시그네틱스·삼성전자·한국3M·포레시아·동서공업 등 경기지역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넘게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김미영 기자

[인터뷰] 이기만 금속노조 경기지부장

“노동이 고립되지 않는 길, 아래로부터 연대”

"우리 지역에서는 정리해고가 최근 1~2년간 잠잠한 편이에요. 해고자들이 무너지지 않고 싸우고 있는 덕분이죠. 정리해고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들이 보여 주고 있기에 사용자들이 주춤해진 거라고 봐요."

북콘서트가 열린 지난 1일 오후 아주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기만(47·사진) 금속노조 경기지부장은 "공장 밖에서 삶이 파괴되다시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용자들이 함부로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는 것이 기존 노조를 지키는 일이고, 기존 노조가 투쟁을 잘 하는 것이 장기투쟁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경기지부는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고용 문제나 노사관계 변화가 어느 지역보다 민감한 편이다. 경제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 무력화 패턴이 가장 먼저 시도된다. 2009년 평택에서 쌍용차지부 노동자들이 해고와 맞서 싸울 무렵 경기지부 조합원들도 줄줄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그들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지부장은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구조조정 사업장 대부분은 이미 생산물량이 빠져 나가 있는 상황이라 파업처럼 사용자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요. 자기 외침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자연스럽게 법에 의존하거나 싸움이 길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돼요. 문제는 노동이 고립돼 있다는 겁니다."

이 지부장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경기지역에서 금속노조의 이런 움직임에 시민단체들은 처음에 냉소적이었다. 이 지부장은 “심지어 노조 때문에 시민사회운동까지 욕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런 이야기들을 묵묵히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소통할까가 점점 발전해서 실천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가 되더라고요. 결실을 맺은 게 희망김장이었어요." 희망김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연대의 힘은 '사람 꽃을 만나다' 출판으로 이어졌다. 이 지부장은 "한 사업장에서 벌어진 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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