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의 정치체계는 양당 구도로 수렴해 가고 있어요. 통합진보당이 13석,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이 5석을 가져가니 마치 다당제인 듯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실은 양당 체제가 더 강화됐다고 봐야죠. 야권연대라는 것도 제1 야당의 일방적 양보가 없었다면 통합진보당의 13석이 가능했을까요. 진보정당은 지금 자기 텃밭을 잃고 남의 텃밭에 배추를 심고 있는 꼴이에요.”

지난 1일 오후 국회의사당 구내식당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41·사진)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갔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가 작동하는 한국정치의 토양에서 ‘독자정당의 독자적 집권’을 표방한 진보정당의 정치적 실험이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는 “박용진은 왜 민주당으로 갔을까”라는 세간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중도’를 놓쳤다고?”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문대 반문’이니 ‘이박연대’니 하는 구도에 대해 박 대변인은 “별로”라고 잘랐다.

“지난번 제가 최고위원 경선에 나갔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한미 FTA 폐기를 당론으로 하겠다고 주장했어요. 뻔한 거짓말이자 표를 얻기 위한 미사여구였죠. 세게 노선투쟁으로 갈지 말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진보정당 출신에다 소수인 우리가 싸움을 걸었다가 통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지도 고려해야 했죠. 분위기에 편승한 거예요. 나중에 평가해 보니 그때 싸움을 걸었어야 하는 거였는데…. 대선을 진두지휘할 당대표를 뽑는 지금도 굉장히 우려스런 상황이에요. 문대 반문 구도에서 ‘너 친노지’, ‘너 과거에 이랬지’ 하는 식이니, 이해찬 후보가 상처를 받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선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 4·11 총선 결과를 놓고 민주당이 중도를 끌어안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중진 의원들로부터 제기됐다. 중도 회귀론에 힘을 싣는 주장이 이어졌다. 통합진보당과의 이른바 ‘좌클릭 연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번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3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20대보다 저조했어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30대는 늘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정책을 요구하는 계층이지 결코 중도가 아닙니다. 30대의 투표 저조현상을 중도의 이탈로 해석하는 것은 틀린 분석이죠. 오히려 저는 민주통합당이 제1 야당에게 개혁노선과 진보적 정책의 전면화를 요구하던 우리의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내지 못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이 총선 실패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남의 텃밭에 배추 심는 진보정당”

야권연대로 이야기를 옮겼다. 양당 체제가 불완전한 현실에서 ‘이념 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박 대변인에게 던졌다. “이념 정당이 필요하다는 바람을 현실에 억지로 밀어넣으려 하면 안 된다”는 공격적 답변이 튀어나왔다.

“제1 야당의 일방적 양보가 없이도 통합진보당의 13석이 가능했을까요. 불가능한 얘기죠. 창원·울산북구·거제 다 잃고…. 진보정당은 지금 남의 텃밭에 배추를 심고 있는 거예요. 진보정당 지난 10년의 결과가 이겁니다. 노동자 결집지역에서조차 진보정당 스스로의 노선이 실현되지 못하는, 노동자 유권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지경에 와 있어요. 이른바 민주노동당 식 노동자 계급정치가 일정한 한계에 다다른 거라고 봐요. 이번에 얻은 13석은 그야말로 남의 떡으로 잔치하는 형국이죠. 이걸 놓고 진보정치가 제2의 도약을 맞이했다고 하면 안 되죠.”

박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의 부정·부실 선거 논란에 대해서도 "진보정당 노선은 임계점에 다다랐다"며 "이번 사태는 브레이크 없이 차를 몰다 큰소리를 내면서 사고를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의 토대에서 우리의 정치지형은 양당 체제로 수렴해 가고 있습니다. 이게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죠. 어쨌든 현실은 양당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가 ‘진보시즌2’ 운동으로 극복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일부 정파를 몰아내면 잘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노동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조합 중심성’이겠지”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며 ‘노동 중심성의 약화 또는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내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의 발언권이 높았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겠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박 대변인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삼국지에 등장하는 연환계(連環計·고리를 잇는 계책)에 비유했다.

“민주노동당을 처음 만든 2000년부터 원내 진출에 성공한 2004년까지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와 노동할당제로 당을 떠받쳐 왔습니다.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민주노총 소속 대의원은 선출이 아니라 배정되는 방식이었고, 추후 정파문제가 얽히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어요. 삼국지의 연환계를 떠올려 보세요. 조조가 주유에게 속기도 했지만, 그보단 배가 흔들리고 병사들의 멀미를 심하게 하니까 배를 묶었던 거예요. 하지만 화공이 예상되고 전쟁의 조건이 달라지면 연환을 풀었어야죠.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투반경을 넓힐 수 있으니까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라는 두 개의 배를 계속 묶어 두는 것이 반드시 옳은 전략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영국노동당 모델을 벤치마킹한 우리의 진보정당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둘을 잇고 있는 쇠고리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으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다. 민주노총은 아무런 당내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 중심성을 강화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대체 노동 중심성을 강화한다는 게 뭐죠? 민주노총 간부들이 당에서 대의원을 많이 하면 노동 중심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2005년 보궐선거 때 권영길 당시 비대위원장이 '큰일 났다'고 하시는 거예요. 선거운동을 하러 현대차 울산공장에 갔는데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위원장님 무조건 찍겠심더'하는데,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바쁘니까 손 치우소' 하더랍니다.”

민주노총으로부터 멀어진, 더 이상 민주노총을 자기 조직으로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가 그렇게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 주요 사업장 정규직들은 자신의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것에 전혀 저항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10년을 왔습니다. 지금 민주노총이 사회적 발언력을 갖나요? 아니요 못 가져요. 노동 중심성, 그 말 자체가 잘못됐어요. 민주노총 중심성이라고 하든가 노동조합 중심성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직 오지 않은 진보의 본진을 기다리며”

박 대변인은 진보정당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에 안주할 때 존재가치를 상실한 정치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좌클릭할 때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할까요. 더 왼쪽으로? 그들이 못 쫓아오게 산으로 올라갈까요? 지난 10년간 진보정당을 지켜 준 지지자들은 세상을 바꾸는 정책과 법안,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바라며 주변 사람들을 끌어다 투표하게 만들고 당비에 특별당비까지 마다하지 않으셨어요. 이분들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등장해 버리는 순간 전보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 상황을 고통스럽게 직시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언제까지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산으로 올라갈 게 아니라 중원에서 맞부딪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과감하게 연합정당을 만들어 그 안에서 진보정치의 노선에 충실한 법안을 만드는 겁니다.”

그가 많은 이들의 의혹의 눈초리를 뒤로 하고 민주당행을 강행한 이유다. 그가 묻는다.

“지난 10년 죽기 살기로 해 봤습니다. 하루도 논 적이 없어요. 수천 명이 감옥에 가고, 수많은 사람이 진보정당의 집권을 기대하다 생을 마쳤습니다. 온 가족을 당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바치면서 당을 세웠어요. 그런데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는 이렇게 답했다.

“혁명의 시대가 가 버렸습니다. 더 이상 봉기나 민중항쟁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무엇보다 국민이 달라졌죠. 2년에 한 번씩 어느 때는 1년에 두 번 큰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은 집권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짱돌과 화염병 대신 투표로 심판하는 시대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하고, 새로운 노선을 찾아가는 것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박 대변인은 아직 오지 않은 진보의 본진과 합류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노동과 함께하는 사회민주적 보편복지의 노선을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연합정당을 통한 새로운 진보정치라는 그의 실험은 과연 어떤 과실을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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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71년 전라북도 장수군 출생
9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서 사회운동 시작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뒤 국회의원 출마
2004년 민주노동당 대변인
2008년 진보신당 후보로 국회의원 출마
2010년 진보신당 부대표
2011년 9월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으로 민주통합당 창당 참여
2012년 6월 현재 민주통합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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