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공동이익과 복리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핵심적 가치는 ‘협동과 자율’이다. 호혜적 가치에 근거해 생산·분배·교환·소비하는 공동체이자 사회운동을 말한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경쟁하는 주식회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협동조합은 공공성을 추구하지만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은 아니다. 정부 정책사업을 대신하기는 하지만 정부가 지휘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조합원 간의 협의와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1844년에 발족한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 효시다. 초기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극단적 빈부격차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세계로 확산됐고, 현재는 약 8억명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협동조합은 농축산업·금융·보건·교육까지 새로운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유엔(UN)은 올해를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주식회사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내자 협동조합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분위기는 정반대다. 협동조합마저 정부 산하기관으로 만들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를 두고 하는 얘기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3월2일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해 지주회사체제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여야가 합의함에 따라 새롭게 출범한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2017년까지 자력으로 자금을 마련해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하려던 계획이 5년 앞당겨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던 6조원의 보조금은 1조원으로 축소됐다. 나머지 5조원은 지급하지 않고, 이자비용인 1천600억원만 지급하기로 했다. 신경분리 계획이 앞당겨진데다 정부 보조금마저 축소돼 농협중앙회는 갈등의 뇌관을 품고 출발을 한 셈이 됐다.

결국 그 뇌관이 터졌다.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전제로 경영개선이행 약정서(MOU)를 요구한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29일 농림수산식품부에 MOU를 제출했고, 노조가 이에 반발해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허권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장은 단식농성을 벌이며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체결한 MOU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신용·경제사업이 분리된 농협중앙회가 출범한지 석 달 만에 삐걱거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MOU는 정부 또는 산하기관이 부실기업에 국민 혈세를 지원하는 대신 체결해 왔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 기업에 대해 감시·감독하는 것이다. 정부가 농협중앙회에 MOU를 요구했다면 부실화된 금융기관 또는 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의도다. 농협중앙회는 부실 금융기관이 아님에도 유사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리한 해석이자 협동조합의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 대형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조차 MOU 체결의무가 없고, 경영권 침해의 소지가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도 아니며, 정부 산하기관 또는 공기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MOU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경영에 개입하는 순간, 농협중앙회는 이미 협동조합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보면 노동조합이 정부와 농협중앙회의 MOU 체결에 반대하는 것은 정당하다.

MOU 체결은 여야의 합의정신에도 위배된다. 지난해 여야가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에 합의한 것은 MOU 체결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농림수산식품부가 MOU 체결을 들고 나왔다. 야당과 노조가 반발하자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노조가 합의하지 않으면 MOU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농식품부는 장관의 말을 뒤집고 농협중앙회와 MOU를 체결을 강행해 화를 좌초한 것이다.

이렇듯 일방적으로 추진된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의 MOU는 폐기돼야 한다. 출범한지 석 달 만에 농협중앙회가 좌초할 수 없지 않나. 협동조합 원리를 훼손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되레 정부는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의 경영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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