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기자

정문주(46·사진)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한국노총 안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한국노총의 하반기 핵심 입법과제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위한 논리적 토대를 닦고,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에 앞서 노동계의 요구를 담은 대선공약을 그려 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다. 각종 토론회에 한국노총 대표선수로 참여해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금속노련 간부로 14년 넘게 일하며 잔뼈가 굵었다. 한국노총 정책본부로 옮겨와 올해로 4년째 근무 중인 정 본부장은 “정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조직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치방침 논란으로 내홍을 겪은 한국노총이 제자리를 잡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그를 만났다.

"법정 노동시간 사각지대 해소 주력"

19대 국회가 개원되면서 한국노총 정책본부도 바빠졌다. 산적한 입법과제를 하나 둘 해결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한국노총은 노조법·파견법·기간제법·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고용보험법 등 6개 법안 개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노조법과 근기법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제약을 완화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노동계의 핵심 요구다.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온 한국노총에게 노조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반면 노동시간 단축의 내용을 포함한 근기법 개정은 제동이 걸린 상태다. 최근 정부는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휴일근로를 주중 연장근로한도 안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근기법 개정안 제출을 당분간 미루기로 했다. 재계의 반발에 물러선 결과다.

“정부가 6월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근기법 개정안을 제출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은 정부 차원의 논의와 더불어 노사정위원회에서 실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관한 실천방안을 마련해 법 개정에 들어간다는 구상이었는데요. 신라 화백제도의 만장일치 의결제도와 다를 바 없는 노사정위 논의구도에서 사용자단체가 반대하면 노동시간 단축을 강제하기 어렵습니다.”

정 본부장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근기법 개정에 대해 "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행정해석으로 기업의 탈법적 초과근로를 인정해 준 관행이 문제였던 만큼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노총 소속 13개 산별연맹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보다 실제 노동현장의 장시간노동 관행이 훨씬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하고요. 한국노총은 법정 노동시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겁니다.”

근기법 노동시간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1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한국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근로시간 특례업종 종사자, 감시·감속노동자의 실노동시간 단축에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한국노총-산별-지역 아우르는 정책역량 강화"

비정규직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국회 개원에 앞서 지난 30일 새누리당이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들고 나오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핵심 노동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의제를 선점한 꼴이 됐다.

“노동위원회에 노조가 차별시정 신청을 할 수 있고 하도급업체를 변경할 때 고용 및 근로조건 유지를 명시하는 등 새누리당의 법안이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걷어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불법파견에 대한 근절의 의지를 밝힌 대법원 판례까지 형성된 마당에, 새누리당의 법안은 불법파견을 양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우려됩니다. 파견과 도급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까지 파고든 위장된 도급 즉 불법파견은 파견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입장입니다.”

현재 한국노총 정책본부에서 일하는 간부는 11명이다. 이 중 2명은 노동부의 국고지원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다 한국노총에 파견 나온 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위원이다. 내셔널센터의 정책본부치고는 규모가 작다.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총의 정책인력이 50여명인 것과도 비교된다.

“노동현안과 입법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인원은 제한돼 있습니다. 한국노총 정책본부가 내셔널센터의 정책본부로 자리매김하려면 산별연맹과 지역본부의 정책 역량을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별과 지역의 정책역량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는데요. 이들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정책본부의 강화를 위해 한국노총에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는 조심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정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조직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정치방침 논란으로 내홍을 겪은 한국노총이 제자리를 잡는 것이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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