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차기 임원(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한다. 선거 시기는 올해 12월이나 내년 1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 방식은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를 병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내셔널센터 임원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 그리고 투표 방식으로 모바일 선거를 도입한 일은 유례가 없다. 그만큼 새로운 실험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 논란이 일면서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직선제. 80만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직선제는 과연 가능할까. <매일노동뉴스>가 민주노총의 직선제 준비상황과 쟁점을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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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를 하면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직선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투표만 가지고는 조직적 결집력을 높이기 어려워요. 선거운동 기간에만 조합원을 동원할 게 아니라 선거를 전후해 조직을 대중적으로 활성화하는 논의가 필요합니다."(A산별노조 관계자)

"노조에서 이미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치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거라고 봐요.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도 높아질 겁니다. 문제는 선거 관리의 투명성이죠. 민주노총 직선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만 생겨도 파장이 일파만파 번질 겁니다. 후보 단일화로 치러지면 모를까 정파 선거로 흐르면 후유증이 우려됩니다."(B산별노조 관계자)

민주노총 직선제가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노총은 2013년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임원(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한다. 여성할당제(30%) 규약에 따라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중 한 명은 여성으로 뽑아야 한다.

민주노총 직선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나뉜다.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소속감과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반, 선거 과정에서 부실·부정선거 논란이 발생하거나 정파 선거로 흐를 경우 후유증에 대한 우려 반이다. 민주노총은 2007년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개정해 2010년 1월 선거부터 총연맹 임원을 직선제로 선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계획과 실무준비 미비로 2009년 9월 임시대대에서 직선제를 3년간 유예했다. 2013년 임원선거까지는 7개월여가 남았다.

직선제 실시, 기대 반 우려 반

직선제는 의무금 정률제와 함께 민주노총 혁신방안으로 최근 수년간 논의돼 왔다. 의무금 정률제는 사실상 폐기됐다. 전체 조합원의 임금을 파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혁신안은 직선제다.

민주노총은 올해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2월 대선 직후인 26~29일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연말에 선거 집행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내년 1월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직선제 예산으로는 5억원을 배정했다. 사무총국에 직선제준비팀을 두고 2명의 상근간부를 배치했다. 모바일투표를 할 경우 1인당 최소 500원에서 1천원의 비용이 든다. 조합원 50만명이 참여한다고 가정했을 때 5억원 예산은 빠듯하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박성현 금속노조 부위원장)는 11명의 선관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노총은 모바일투표 실시가 확정될 경우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참여하는 법률단과 기술자문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조합비 납부하는 모든 조합원에게 선거권 부여

직선제에서 핵심 사안은 선거인명부 작성이다. 직선제 도입을 논의하면서 논란이 됐던 쟁점 중 하나가 선거권을 누구에게까지 부여할 것인가 여부였다. 총연맹에 의무금을 납부하는 조합원까지냐, 단위노조에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 모두를 포함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결국 후자로 정리됐다. 의무금을 내는 만큼 산별조직에 대의원을 배정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김정아 민주노총 직선제 팀장은 "조합원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되 조합비 납부가 증명됐을 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가맹조직별로 선거인명부를 작성해 중앙선관위에 제출하는 식이다.

투표 방식으로는 현장투표·모바일투표·부재자투표가 논의되고 있다. 부재자투표는 구속자에 한해 실시된다. 투표 방식은 현장 상황에 따라 단위사업장에서 선택할 수 있다. 모바일투표를 결정한 사업장은 조합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제출해야 한다. 모바일투표는 투·개표 작업을 원활히 하고 조합원들의 투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할 경우 노조 사무실을 들르지 않아도 된다. 투표함 이송 과정, 개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실·부정 선거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관건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

그런데 모바일 투표를 하려면 뛰어넘어야 할 관문이 적지 않다. 관건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가 가능할 것인가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임원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휴대전화가 조합원 본인의 것인지 확인해야 하고, 본인에게 수신된 문자를 제3자에게 전달해 제3자가 투표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 모바일업체 관계자는 "URL(인터넷상의 파일 주소)을 문자로 수신받아 투표 페이지로 이동하는 모바일 웹 방식은 원천적으로 대리투표를 방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문자로 후보를 찍어 전송하는 방식은 휴대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지 않는 한 대리투표가 불가능하지만 비밀투표 논란이 일 수 있다. 게다가 업체마다 기술 수준이나 적용하는 프로그램이 천차만별이어서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권두섭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내가 1번 후보를 찍은 것이 제대로 반영이 됐는가 하는 기초적인 부분부터 사후 선거 결과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을 때 검증이 가능한 시스템인지까지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선거 기간 도중에 누군가 서버에 접근했을 때 접근 기록, 접근해서 어떤 작업을 수행했는지 정보가 남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한 검증은 프로그램 제작자가 아닌 제3자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나중에 선거 효력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동의·투표율 50%도 쟁점

모바일투표를 하려면 민주노총이 각 산별조직으로부터 조합원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산별조직들은 총연맹에 번호를 제공하기 전에 조합원으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직선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민주노총이지만 직선제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산별조직과 단위노조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특히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선거 자체가 무산되기 때문에 대대적인 홍보작업을 펼쳐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다음달 7일 직선제를 중간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모바일투표 채택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 준비작업을 총괄하는 강승철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직선제 도입 취지는 간선제가 갖고 있는 중앙조직 관료화를 해소하고 조직을 쇄신하는 것"이라며 "직선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민주노총의 위상 제고와 조합원들의 신뢰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총장은 그러나 "제도 준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제도 보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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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터뷰-김정아 민주노총 직선제 팀장]

"현장 단위노조 간부의 참여와 관심 절실"


조현미 기자
"모든 게 어렵습니다. 모바일투표도 처음 시도하는 것이고,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하기도 힘들어요. 신뢰 구축과 현장간부들의 참여가 직선제의 성패를 좌우할 것 같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정아(39·사진) 민주노총 직선제 팀장은 "흔히 민주노총의 현장 동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직선제 제도를 설계하는 동시에 조직의 리더십과 지도 집행력을 어떻게 구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조직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는 바람에 민주노총 직선제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졌다. 김정아 팀장은 "현재 지역본부에서 직선제를 많이 실시하고 있는데, 투표 관리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며 "선거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에는 다양한 산업별 노동자들이 가입돼 있다. 직종 특성에 따라 이동투표 같은 관행이 인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총연맹 직선제의 경우 어느 특정 산별조직의 관행이 다른 산별조직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김 팀장은 "관행을 예외로 인정하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통일된 기준과 원칙으로 제도를 세팅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연맹이 직선제 제도에 대한 기본 세팅을 하고 나면 단위사업장 노조간부들이 현장에서 이를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다음달 7일 개최하는 토론회는 직선제 준비 현황에 대해 공개적·조직적으로 공유하는 자리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열리는 중집에서 모바일투표 채택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중집에서 논란이 커질 경우 중앙위원회나 임시대의원대회로 논의가 확산될 수 있다. 김 팀장은 "8월쯤이면 중앙위나 임시대대에서 선거방식과 선거 일정이 결정될 것"이라며 "총연맹 직선제는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조합원 가슴 속에 신뢰받는 새로운 지도 집행력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직선제팀은 16개 산별연맹 규모별 사업장 100곳을 대상으로 모바일투표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방문샘플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8월로 예상되는 임시대대까지 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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