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7일부터 서울시청 광장 인근 재능교육 을지사옥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7년 12월21일부터 시작된 재능투쟁은 24일로 1천617일을 맞이했다. 사진=제정남 기자

1박2일로는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부는 서울시청 광장 앞 재능교육 을지사옥 텐트농성장을 지키고, 을지사옥 앞에서 하루 세 번 선전전을 진행한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하루 두 번 선전전을 벌인다. 매일 저녁에는 문화제를 연다. 투쟁사업장 연대투쟁도 나선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1박2일간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농성장을 찾아 조합원들의 투쟁 일상을 함께했다.

지난 2007년 12월21일 시작된 재능지부의 투쟁은 이달 7일로 1천600일을 맞이했다. 노조가 내세우는 요구는 간략하다. 노조인정과 단체협상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이다. 24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 앞 재능교육 을지사옥 인근에 위치한 농성장을 찾았다. 전날 밤부터 농성장을 지켰던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재능교육 해고자)이 기자를 맞았다. 1박2일 동행에 행여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취재 취지를 설명하는 기자에게 유 처장은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오수영 재능지부 사무국장도 그랬다. "상관없으니까 아무 때나 오세요." 재능 농성장은 정말 아무나, 아무 때나 와도 되는 열린 공간이었다.

24일 점심시간. 황창훈 학습지노조 서울경기지역본부장(재능 해고자)이 천막 농성장 인근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재능지부는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 번 농성장 인근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언제나 열린 공간, 재능 농성장

농성장은 튼튼했다. 부러진 각목과 대나무, 쇠파이프를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여 만들었지만 아늑하기까지 했다. 스티로폼 벽면에는 투쟁을 격려하는 방문자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재능지부의 싸움이 노조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재능지부 해고자는 12명이다. 유명자·오수영·황창훈·이현숙·김경은·박경선·강경식·유득규·이지현·여민희·정순일·최민정. 유명자 지부장과 오수영 사무국장은 단협 해지 과정에서, 황창훈 본부장은 2001년 파업투쟁 이후 해고를 당했다. 여민희·이지현 조합원은 2007년 12월 사측과의 마찰 과정에서 당한 부상으로 6개월 휴직신청을 했지만 복귀 후 '교실'을 주지 않아 사실상 해직상태에 있다. 교실이란 학습지교사가 방문학습을 위해 하루 동안 다니는 지역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담당할 회원을 맡기지 않은 것이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2010년 말 사측의 전 조합원 해고방침에 의해 해고됐다. 그중 한 명인 이지현(45·사망당시) 조합원은 올해 1월 암으로 사망했다. 현재 부산 2명, 울산 1명, 춘천 1명, 수도권 7명이 복직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재능지부 조합원들의 하루 일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서울시청 앞 농성투쟁에 하루 5명의 조합원이 결합한다. 농성은 당직제로 운영된다. 아침-점심, 점심-오후, 오후-밤, 밤-야간으로 나뉘어 있다. 철야농성은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조합원 두 명이 함께한다.

서울시청 앞 선전전은 하루 세 차례 진행된다. 아침 출근시간, 점심시간, 저녁 퇴근시간이다. 교대하는 당직자들이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농성장 주위를 돌아다닌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도 아침과 점심시간 등 하루 두 차례 선전전을 벌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독한 바람이 불어도 매일 저녁 7시에는 농성장 앞에서 문화제가 열린다. 수도권에 있는 조합원들이 참여한다. 선전전이나 농성 당직에 빠진 조합원은 다른 투쟁단위에 연대활동을 나간다.

이러한 모든 투쟁을 7명의 조합원들이 한다. 하루 종일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24일 점심시간에 황창훈 본부장이 선전전을 시작했다. 선전전이라지만 그리 거창하진 않다.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농성장 주위를 오간다. 천천히 걷는 탓에 얼핏 보면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농성장 인근 주민과 직장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을지사옥 농성장은 2010년 11월7일 만들어졌다. 노동자대회가 광장에서 열리는 사이 슬쩍 천막을 펼쳤다고 했다. 24일은 그로부터 565일째 되는 날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주위를 지나는 사람과 인근 상가 사람들은 농성장을 하나의 풍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농성장이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한 것 같았다. 농성장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회사원 김아무개씨(39)는 1인 시위를 흘깃 쳐다본 뒤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건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사람들과 달리 조합원들의 마음은 간절하다. 농성장을 서울시청 앞으로 옮기기까지 재능지부의 투쟁은 서울 혜화동 본사 앞에서 이뤄졌다. 회사가 천막 설치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우산을 들고 사시사철을 보냈다. 비나 눈이 오면 우산이 됐고, 햇볕이 내리쬐면 양산이 됐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묵묵히 견뎠다.

재능지부 농성장 옆에는 법원의 집회금지등가처분 결과를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전쟁터가 된 농성장, 좌절은 없다

그러나 2010년 3월부터 회사측이 용역직원들을 투입한 뒤에는 혜화동 본사 앞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돼 버렸다. 여성 조합원들을 향해 성폭력에 버금가는 언어폭력이 쏟아졌고, 남성 조합원에겐 물리적 폭행이 다반사였다. 황 본부장은 "용역직원들은 급소를 발로 차고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간다"며 "여성 조합원이 비명을 지르면 그 소리를 녹음해서 자기네들 벨소리로 쓰며 희희덕거렸다"고 증언했다.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벌어진 처참한 증언들은 수차례 언론에 소개됐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좌절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지 않고 힘을 냈다. 농성장을 서울시청 앞으로 옮기고 나서야 조합원들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유득규 사무처장은 "용역깡패가 들어온 뒤 사실 너무 힘들었다"며 "시위하는 사람을 현장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도 마음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지내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황창훈 본부장은 "농성장을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힘들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서로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곤 한다"며 "혜화경찰서는 집회신고도 받아 주지 않고, 용역깡패에게 시달리는 등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이어지던 이야기는 쌍용자동차 대한문 시민분향소 강제철거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이현숙 조합원이 농성장으로 돌아오면서 끊겼다. 저녁 문화제 준비를 위해 교대를 할 시간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문화제는 서울 혜화동 재능본사 앞에서 열렸다. 이달 2일부터 11일까지 릴레이 집중기도회를 했던 '재능교육 사태 해결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의 53차 촛불기도회였다. 1년여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재능교육 사태 해결을 위해 재능본사 앞에서 기도회를 이어 온 것이다. 농성장 당직자를 제외한 모든 조합원들이 기도회에 참석했다. 유명자 지부장은 "기독대책위가 함께 자리를 지켜 주셔서 너무 많은 힘이 된다"고 감사해했다. 그는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당했던 일이 떠오른 듯 "자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는 울먹이기도 했다. 저녁 7시30분부터 9시까지 이어진 기도회는 쌍용차 분향소 지지방문으로 마무리됐다.

밤 10시께 다시 찾은 농성장은 만담장으로 변해 있었다. 쌍용차 분향소 철거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은 혹시 재능 농성장도 철거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줄을 이어 농성장을 찾았다. 쌍용차 분향소가 들어선 뒤 매일 농성장을 찾는다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퀵서비스·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좁은 농성장을 돌아가며 지켰다.

사실 재능지부 농성장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다. 수차례 구청에 의해 철거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인지라 음식 배달도 되고 신문배달도 된다. 택배도 농성장에서 받는다. 조합원들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검진해 주는 한 한의사는 한약을 택배로 보내 준다. 시민들의 격려물품도 들어온다.

24일 저녁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기독교대책위가 주관하는 53차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촛불기도회가 열렸다.

연대의 힘으로 투쟁 현장을 지키다

24일 밤 재능 농성장은 매주 목요일 철야농성에 참여하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관계자들과 여민희 조합원이 자리를 지켰다. 새벽이 돼도 농성장 안은 따뜻했다. 아직 제 기운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기들이 윙윙거렸지만 간단한 손놀림만으로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천막 비닐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문제는 소음. 서울시청 신청사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철망치를 내려치는 듯한 소음은 공명을 일으키며 밤새 퍼져나갔다.

"오늘이 며칠째더라?" 25일 아침은 빨간 펜을 쥔 여민희 조합원의 손 움직임으로 시작됐다. 하얀 종이에 그려지는 '1618'. 이날은 재능투쟁 1천618일차이자 서울시청 광장 농성 566일차가 되는 날이다. 아침 선전전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에서 담당했다. 같은 시간 혜화동 재능본사 앞에서도 한 조합원이 선전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당직으로 농성장을 찾은 황창훈 본부장은 그 사이 남대문경찰서로 집회신고를 하러 갔다.

재능지부는 매주 금요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집회를 연다. 본사 인근은 집회신고가 사전에 돼 있는 탓에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 모이는 것이다. 이날 집회에는 학생·연대단체 회원 30여명이 참여했다. 재능지부 집회지만 전날 쌍용차 시민분향소 강제철거 소식이 화제가 됐다. "아직 그들의 공세를 막아 내기에는 우리의 힘이 부족하다", "연대를 통해 힘을 더 키워 나가야 한다"는 발언이 잇따랐다. 학과 구조개편안 시행 중단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한 청년의 발언에 격려가 쏟아졌다.

"회사와 학교. 때려치우면 그만이겠지만 투쟁이기 때문에 돌아가야 합니다. 투쟁하는 이들이 현장에 있어야 그들이 두려워할 겁니다."

전날 농성장에서 한 조합원에게 "학습지교사가 노동강도에 비해 급여는 적잖아요. 복직하시면 돌아가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 "당연히 일터로 돌아가서 일해야죠. 복귀해서 우리 식대로 일하면서 행복을 찾아갈 겁니다."

여민희 조합원은 반복되는 투쟁이 지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매일이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혜화로터리 집회가 끝나자 조합원들은 오후 2시 연대집회를 위해 시위물품을 챙겼다. 저녁 7시에는 어김없이 문화제가 열렸다.

재능지부는 29일부터 회사측과 교섭에 들어간다. 지난해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6개월에서 36개월의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이에 조합원들은 "차라리 3년간 더 투쟁하겠다"고 반발했다. 이날 교섭은 지난해와 달리 회사측의 정식 대화요청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재능교육 노사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25일 아침. 여민희 조합원이 재능투쟁 1천618일차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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