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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
조현주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을 들으면 2009년 처절했던, 전쟁 같았던 진압이 떠올랐다.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을 들으면 노동자들의 죽음과 가족의 자살이 떠올랐다. 막연한 이미지만을 갖고 있던 내가 쌍용차 조합원을 처음 만난 건 3월이었다. 휴일 저녁 법률원으로 온 접견요청에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강남경찰서에 계신 분은 쌍용차 지부장님이셨다. 강남서 문을 열고 지능팀으로 올라가 지부장님을 만났다. 지부장님의 얼굴과 손은 까맸고 눈빛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체념과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지부장님은 희망광장 문화제 후 모여 있다 해산명령불응죄로 잡혀오셨다고 했다. 기력을 소진한 듯한 지부장님을 경찰서에 두고 나오면서 마음이 아팠다.

3월30일 쌍용차를 다니다 부당해고된 청년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는 임대아파트에서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릴 당시 그 사람의 절망감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 후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 후 22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를 마련한 후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지부장님의 첫마디는 "살려 주십시오"였다.

분향소에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길을 가던 시민 한 명은 분향소로 들어와 조문을 한 후 말 없이 지부장님을 안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분향소를 지키는 쌍용차 조합원들을 위한 밥셔틀도 이어졌다. 시민상주단이 구성돼 시민·사회단체 구성원·학생 등이 분향소를 지켰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은 쌍용차 범국민추모위원회를 구성했고, 공지영 작가·영화배우 김여진·방송인 김미화 등은 ‘함께 살자, 100인 희망지킴이’를 만들었다. 법률가단체에서 시민상주단에 참여하러 분향소에 갔을 때는 고등학생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5월11일에는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악 콘서트’가 열렸다. 변영주 감독이 사회를 보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박제동 화백 등이 무대에 올라 쌍용차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위로를 전했다. 그날 방송인 김제동은 무대에 올라 썰매를 만들어 줬던 매형 이야기를 했고, 이런 말을 했다.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 나의 아픔도 외면받지 않을 거라는 기대·믿음을 가질 수 있다."

콘서트가 열렸던 날, 대한문 앞이 1천여명의 추모객으로 가득찼던 날, 쌍용차 지부장님은 비로소 웃고 계셨다. 누군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쌍용차 해고자들을 웃게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쌍용차 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5월19일 범국민추모대회를 마지막으로 쌍용차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를 마쳤다. 이후에는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윈회로 전환해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고 한다. 몇 년 전 누군가 내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지 분노와 투쟁의 대상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애도는 불합리·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되고, 심장이 되고, 머리가 되고, 발이 돼 투쟁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쌍용차 이창근 동지가 트위터에 올려놓은 글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고통과 죽음 앞에는 '우리'와 '타인'이 없다. 연민과 동정이라는 '가면'을 벗어 버려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인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타인의 죽음'에도 용감히 뛰어들어야 하리라."(수전 손택)

조현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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