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기획실장

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근로복지공단 등 사회보험 관련 공공기관 노조들이 ‘사회보장기관노조 통합추진위원회’ 라는 이름으로 연대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들이 정부 정책에 대응해 연대활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한 주체로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통합추진위가 연대활동을 넘는 조직통합을 주장하면서도 민주적 의견수렴과 조직의 발전전망, 노동운동의 방향 등 꼭 고려해야 할 여러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노조통합이라는 중대한 논의가 조합원의 의견수렴 속에서 민주적으로 추진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각 조직 대표들은 통합추진위 결성과 함께 불과 4개월여 만에 노조 통합일정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소속 산별노조·연맹은 물론 각 조직 내부의 공식 의결기구에서도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직별로 다소 편차는 있겠으나, 수십 년 운영해 온 노조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조합원 사이에 공감대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통합 날짜부터 잡고 추진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일정의 촉박함은 준비의 부실함으로 이어진다. 통합추진위는 정부의 일방적인 사회보험 정책과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한 연대투쟁은 강화해야할 일이지만, 곧장 노조부터 통합한다고 그 취지가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있다.

첫째, 노조가 연대활동을 넘어 통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공동투쟁 경험을 통해 신뢰를 만들고 공동의 요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4대 보험 징수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각 조직 간 쟁점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사회보험 발전방향에 대한 각 노조의 요구안 통일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물론 이것이 해당 노조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의 징수자격 부여·서비스공급 등 영역을 통합·재편하는 데에는 많은 사회적 논의와 정책 준비가 필요하니 당연한 일이다. 관련 학계와 정부도 정책마련에 골머리를 싸매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불과 몇 개월 만에 노조 조직부터 통합해 사회보험 정책에서 쟁취할 목표가 명확해지거나 각 기관 노조 간 입장이 통일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둘째, 정부의 사회보험 정책에 대한 대응은 해당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문제를 넘어 전체 노동자와 국민의 문제다. 따라서 해당 기관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내셔널센터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노동자 내부의 동의와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만들며 투쟁해야 실현가능성이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물론 그동안 필자가 속한 공공운수연맹이나 양대 노총의 사회공공성 운동이 이에 미치지 못한 한계는 분명하며,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양대 노총을 탈퇴하면서 사회보험기관(6개 노조, 2만여명) 관련 노조를 통합한다고 이러한 과제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서 덧붙이자면, 지난 95년 ‘민주노조 총단결’의 기치로 민주노총을 함께 출범시킨 연대투쟁의 정신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셋째, 각 노조들은 사회보험 관련기관 노조일 뿐 아니라 공공기관 노조이기도 하다. 연봉제 등 정부의 일방적 예산지침을 비롯해 인력감축과 업무 과중, 경영평가와 낙하산 인사 등 공공기관 현장에서 고통 받는 문제는 공공부문 노조의 넓은 연대로 대응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필자가 속한 공공운수노조와 같은 산별노조가 추진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보험 정책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 현장이 고통 받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더 큰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6개 노조 내부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으며, 건강보험공단의 두 개 노조는 다양한 입장을 가진 후보가 출마해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고 모으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연대의 강화·발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은 물론 노동운동의 폭넓은 과제가 반드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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