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실장

“무키무키 만만수는 언제 나오나요?”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은 지난해 여름 4차 희망버스 행사가 열린 서울 서대문공원에서 ‘무키무키 만만수’의 연출 여부를 물었다. 무키무키 만만수는 그해 여름 4~5차 희망버스에 나오지 못했다. 무키무키 만만수는 초기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많은 인상을 남겼다.

100년 전 러시아 혁명기에나 어울릴 법한 노래만 들어오던 올드보이 좌파들은 기절할 노래였다. 무키무키 만만수의 장난스런 가사와 굿을 하는 듯한 괴성, 전위적 퍼포먼스까지 보고 나면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87년 이후 운동권의 고전적 창법과 율동을 한꺼번에 깨 버리는 무키무키 만만수는 20대의 여성 듀오였다. 20대 초반의 두 여성에게 이런 감성과 전위성을 심어 준 음악적 영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만수’와 장구를 개조해 만든 구장구장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무키’는 최근 앨범을 냈다.(한국일보 15일 23면) 지난해 희망버스에서 봤던 무키무키 만만수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두 사람이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인 24살 동갑내기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학내 신문사에서 만나 함께 음악을 하게 된 사실도 알았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첫 공연을 ‘쓰레빠 음악회’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주류언론과 인터뷰에서도 “앞으로도 정신분열적 음악을 할 것”이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담대함을 갖췄다.

그렇게 희망버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낸 축제였다. 희망버스가 특정한 한 시대적 화법에 갇힌 세력들로만 뭉쳤더라면 재벌 천국인 한국사회에서 지난해에 그만한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2004년 1월 민주노총 위원장이 단병호 위원장에서 이수호 위원장으로 바뀌었다. 투쟁의 시대를 대변해 온 단 위원장을 뒤로 하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들 했다. 누구는 20년 된 87년 체제가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고 다시 8년이 지난 지금 노동운동의 새 주역들은 심판대에 올랐다. 한 시대는 앞선 시대를 합리적으로 단절하는 동시에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내홍이 깊어갈수록 과거의 인물들이 요란하게 신문지면에 등장한다. 인민노련의 이론가였던 주대환을 시작으로, 잠시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진중권, 잠시 사노맹에 기웃거렸던 조국 교수도 자주 SNS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다.

사노맹의 수장 백태웅도 지난 15일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면에 ‘시민과 함께하는 진보정치의 복원을’이란 제목의 기고로 한 숟갈 거들었다. 그는 “비장한 투사 대신에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대화하며 즐기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직함은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였다.

나는 그가 97년 출옥 이후 어떤 행보를 거쳤는지 잘 모른다. 국민들은 더욱 그러하다. 왜 미국의 하와이대 교수가 한국의 진보정치를 논하는지 모른다.

같은날 같은 한겨레신문 9면에 실린 ‘김찬경, 이수성 전 총리에 특혜 의혹’ 기사는 배 타고 밀항하려다 잡힌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이수성 전 총리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일보는 6면에 좀 더 확실하게 ‘김찬경, 이수성 전 총리 아들 특채’라고 썼다. ‘마당발 총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 양반 오지랖도 참 넓다.

33면에 실린 백태웅의 글과 9면 기사의 ‘이수성 전 총리’라는 이름이 자꾸 겹친다. 허명에 기대어 실체를 규명하려는 언론의 헛손질이 안타깝다. 조선일보 같은 색깔론도 문제지만, 명망가만 찾아다니는 습성이 더 문제다. 이런 방식으론 결코 실체에 접근 못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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