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매각’ 소식이다. KTX 수서발 노선에 이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매각한다는 소식이다. 우리금융지주도 팔아버린다고 한다. 하나같이 정부가 최대 주주인 공기업이다. 재벌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튼실한 공기업들이다.

정부가 이들 공기업 지분을 팔아버리면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인수한 대기업은 위상이 달라지고, 외국자본은 한국 시장에서 날개를 단다.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고, 국부유출로 나라 곳간이 털릴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이니 공적자금 회수라는 미명 하에 공기업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지고, 임기가 8개월밖에 안 남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야 모두 정부의 이런 행보를 못 마땅해 한다. 여당은 협의도 없이 정부가 너무 앞서나간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야당도 국민들의 눈높이보다는 관료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이럴진대 정부는 왜 독불장군이 됐을까.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보면 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우리금융지주 우선협상대상자가 이르면 8~9월경에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4·11 총선이 끝난 후 같은 달 29일 민영화 재추진 선언을 한 데 이어 30일 매각 공고를 냈다. 여당의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조건에 발맞춰 우리금융지주 매각 재추진 신호탄을 쏜 것이다.

“우리금융은 국민혈세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11년이 지났다.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 돌려줘야지 노조의 투쟁 대상이 아니다.”

김석동 위원장의 발표는 공세적이고 단호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관료들의 공세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야당이 승리했다면 주춤했을 공기업 매각을 정책 우선순위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측근 비리 청문회와 특검으로 이어지면서 ‘정권 심판’ 분위기로 흘러 갈 19대 국회가 관료들의 시그널로 뒤바뀔 조짐이다. 19대 국회와 연말 대선의 쟁점이 어느새 공기업 매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럴 의도였다면 김석동 위원장은 말 그대로 ‘MB의 순장조’라고 자처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금융지주는 외환위기 후 11년 동안 12조원의 국민 혈세가 지원됐다. 우리은행을 포함해 우리금융지주사 전체(자산 약 290조원)의 상대적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4.8%를 차지한다. 워낙 거대은행이라 정부가 두 차례나 매각공고를 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산은금융지주가 인수 의향을 밝혔다가 정부의 제지로 포기했다. 그 뒤에도 마땅한 인수자가 없어 정부는 민영화 작업을 중단했다.

정부는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매각 흥행을 위해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이것마저 국회가 제동을 걸었다. 금융지주사가 타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때 95%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조건을 50%로 낮추려고 했으나 좌절됐다.

결국 김석동 위원장의 민영화 재추진 선언은 19대 국회에서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대형은행 간 합병의 후유증을 우려해 규제를 유지하기로 한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처사다. 여당의 총선 승리 ‘후유증’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우선협상자 선정에 있어 국내 은행과 외국자본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고 밝혔다. 김석동 위원장 말처럼 투입된 공적자금은 회수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특혜나 국부유출로 얼룩져선 안 된다.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떠난 먹튀자본인 ‘론스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력한 인수자로 떠오른 KB국민지주와의 합병이 추진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메가뱅크는 이미 실패한 구상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후 은행들은 짝짓기를 통해 점포와 인력만 줄였을 뿐 합병효과를 극대화시키지 못했다. 되레 은행이 대형화되면서 독과점이 심화됐다. 소비자금융이나 자산운용부문의 경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거대은행들은 대마불사를 믿고 고수익·고위험 상품 개발과 판매에 혈안이 됐다. 메가뱅크는 금융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가 닥치면 위험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은행의 규모를 제한하고 감독을 강화한 것은 이를 의식한 것이었다. 금융노조가 금융공공성을 위해 메가뱅크 설립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8대 국회에서 여야가 정부의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한 것도 메가뱅크의 위험을 경계해서다.

금융관료들만 메가뱅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지분을 일괄매각하는 것이 어렵고, 후유증도 심각하다면 서두를 일이 아니다. 8개월 밖에 안 남은 이명박 정부가 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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