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후보 추천과정에서 발생한 부실·부정투표 논란에서 출발한 통합진보당 사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혁신비상대책위 구성과 순위경쟁 비례대표 후보의 전원사퇴를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했지만 당권파들은 이 중앙위원회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혁신비대위에 대응하는 당원비대위를 구성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통합진보당이라는 같은 울타리에 있지만 살림은 따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후보를 냈던 민주통합당의 기류도 싸늘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혁신하지 않으면 야권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 꼴이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 해결책은 없을까.

“민주노총 혁신 전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재논의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노동계는 원점으로 돌아가 정치세력화의 원래 취지인 현장 중심의 노동정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서야 한다. 통합진보당에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권파가 몽니를 부리고 있기 때문에 쇄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느냐 조건부로 지지하느냐는 핵심이 아니다. 내용적으로는 이미 철회됐다고 본다. 이제 어디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을 아우르는 정치세력화를 할 것인지, 민주노총의 독자적인 실력만 갖고 갈 것인지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통합진보당은 애초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논란 속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정 선거와 폭력사태로 막을 내렸다. 진보정당으로서의 생명은 마감됐다. 진보신당도 정치적으로는 해산된 것이기 때문에 두 정당이 민주노총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그루터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민주노총 내부의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 정규직 노조와 대공장 중심의 기업별노조 중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8월 총파업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앞세운 것은 바람직하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계급 대표성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 없는 거대 보수 2당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정파의 폐해를 넘어서는 것도 최소한의 전제다. 민주노총에서도 미조직 비정규직, 심지어 조직원인 자신의 조합원들의 이해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편협한 정파 이익 패턴이 진행돼 왔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태 빨리 마무리해야 … 야권연대 비판시각 증폭될까 우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매우 충격적이고 참담하다. 특히 폭력사태는 당내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와 자정능력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줬다. 있어서는 안 될 모습이다. 연말 대선에서 야권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통합진보당이 당내 선거부정 의혹 진상규명과 폭력사태에 대해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 지금처럼 당내갈등이 계속되면 국민적 실망감과 민주통합당내 피로도가 쌓일 것이다. 지금은 드문드문 문제제기 차원에서 나오는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 일단 강기갑 비상대책위원회가 가져야 할 임무와 부여받은 역할이 있는데 빨리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조치를 진행시켜 줄 것을 기대한다.

“진실규명과 정치적 해결 병행해야”

안동섭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현재로서는 ‘이게 해결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로 함께 해결하고자하는 의지가 확인되지 않아서 그렇다. 3자 통합정신으로 돌아가고, 진상조사보고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진보정당의 집권을 위해 하나가 되자는 것이 통합정신이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유연하게 통합을 주도한 구 민주노동당의 지도부에게 실체 없는 '패권주의' 딱지를 붙여 마치 적처럼 대하고 있다. 통합정신이 많이 훼손됐다.

진상조사보고서의 실체를 밝히자는 게 해결책을 나중에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국운영위에서 진상보고서가 부실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적어도 진상조사보고서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과, 정치적인 해결책을 연동해 동시에 논의하자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강기갑 비대위측에서는 특위를 구성해 재조사한다고 하지만,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무조건적인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나.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이다.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사퇴해야 한다’는 것인데. 진보는 그런 게 아니다. 진실에 기초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보다. 마녀사냥 식, 여론몰이 식 사퇴압력을 유보한다면 현재의 국면은 분명히 전환될 것이다.

"귄위 있는 중재자가 선거부정 직접 책임자 찾아내는 일부터"

정영태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느낌이다. 해법을 찾기에 앞서 시간을 두고 가열된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결국 답은 양자 간 타협밖에 없다. 당권파와 비당권파를 조율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중재자가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사태 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이석기·김재연 등 당권파 소속 당선자들이 의원 등록까지 마친 상태에서 이들에게 의원직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과도한 면이 있다. 당권파 스스로 궁지에 몰렸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그들이 백기를 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 해야 할 일은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에 대해 보다 면밀히 진상조사를 벌여 선거부정에 개입한 직접 당사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일이다. 이석기나 김재연이 부정선거를 직접 사주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이들은 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 선거부정을 사주한 증거를 찾겠다고 조직을 까뒤집는 순간 당은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잘잘못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이번 비례대표 선출 문제의 원인 제공은 근본적으로 당권파가 했다. 이 때문에 비당권파나 시민사회단체·민주노총까지 당권파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권위 있는 중재자가 나서 선거부정에 개입한 직접 당사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일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거취 문제는 그 다음 문제다. 통합진보당 출신 의원이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차피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밉든 곱든 머리를 맞대야 할 것 아닌가. 패권주의나 종북 같은 문제들은 복잡하거니와 개인의 신념에 대한 문제다.

“혁신비대위에서 조사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정치적 책임 져야” 

 조성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우선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어쨌든 책임의 소재가 기존의 당권파라고 지칭하는 파벌에게 더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사람들이 책임감 있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양보하고, 살점도 떼내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비대위에 당권파들도 참여해야 한다. (당권파가 주장한대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부실했다면 혁신비대위에서 제대로 조사하면 된다. 당권파가 당원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지금 통합진보당이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는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이나 부실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당권파의 가장 큰 불만이 진상조사위에서 조사한 것이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혁신비대위에서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고 특위가 나름대로 정확하게 조사를 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부정과 부실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당원총투표 제안은 정치적 판단에 의한 밀고 당기기 전략 하에 나온 대안일 것이다. 당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당의 내규가 있을 것이다. 후보 공천 같은 경우는 당원 투표를 했을 것이다. 당의 정책과 이런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당의 내규에 따르면 될 문제다. 당원총투표 주장은 당의 내규나 규칙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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