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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연속기고 3]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가 끊이지 않는 길 위에서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영화 ‘레드마리아’의 한 장면. 일본의 전자회사 파나소닉에서 18년 동안이나 파견노동자로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당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 사토씨가 회사 앞에서 홀로 마이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 있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러분과 똑같이 오늘 먹을 음식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해고와 함께 그녀의 평범한 일상은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2009년 용산참사의 잔혹한 현장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불길 속에 휩싸이고,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 현장에서 외쳐졌던 “사람이 있다”라는 절규는 사실 그대로 그곳에 살아 숨쉬는, 당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있다는 간절한 호소였다. 하지만 작전대로 진압을 수행하는 경찰들에게 그곳에 있는 이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해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똑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은 누구도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전기도 물도 끊긴 상태에서 무차별한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와 경영진·경찰들은 그런 상황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그저 '하루빨리 치워 버려야 할', '저것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당시에 사람이 아닌 ‘저것들’로 취급됐던 해고노동자들은 싸움이 끝난 후엔 ‘유령’이 됐다. 분명히 이 세상 속에서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들 역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다른 이들과 똑같이 밥도 먹고, 옷도 입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일상을 꾸려 나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무도 이들에게 이러한 일상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회사는 약속을 쓰레기처럼 내팽개쳤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이유로 취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부와 회사는 가압류를 통해 이들이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조차 철저하게 단절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이 아닌 유령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들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생명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 처절한 증명조차 한 명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무려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야 했던 것이다.

18일은 스물두 번째 ‘사람’의 49재 추모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와 경영진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매일 평택의 공장 앞과 대한문 앞에서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임을 기억하고, 함께 그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이 마음과 뜻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49재가 지나고 또다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힌다면 이들은 언제고 다시 스스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해야 하는 이들은 권력과 이윤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소중한 삶과 생명조차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는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그 증명을 요구해야 한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야 할 당사자들은 쌍용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아니라 당신들이라고, 당장 모든 손해배상·가압류를 철회하고 이들을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라고 외치며 함께 싸워야 한다. 너무 늦은 것 같아도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더 많은 함께할 ‘사람’들이 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눈물이 아니라 한 번의 발걸음이 필요한 때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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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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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개 2012-05-18 11:15:28

    가슴 아픈 현실을 아주 잘 써주셨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합니다. 49제란 이승에 머물던 영혼을 떠나보내는 날이라 하는데 어찌 갈 수 있으며 어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정부와 회사는 해고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모는데 집권당의 국회의원이 많이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안타깝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언제 또 그 강물에 몸을 던질까 가슴 먹먹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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