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버스노동자들은 매달 적지 않은 손실임금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접촉사고가 나면 도로교통법에 의해 행정처벌을 받고, 피해 정도에 따라 인신이 구속되는 사법처리를 받기도 합니다. 구속된 경우 통상 2천만원 정도를 합의금으로 물어야 됩니다. 보험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기사 개인이 자기 돈을 부담해야 하는 거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회사의 징계와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과태료 고지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스노동자들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처벌제도를 도입하겠다니요.”

김주익(57·사진) 자동차노조연맹 위원장의 말이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오는 8월 버스기사 운전자격제도를 도입하면서 처벌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버스노동계가 들끓고 있다. 국토부가 내놓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안에 따르면 운행 중 과태료 처분을 받은 운전자가 동일한 위반행위를 한 경우나 교통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자격정지 또는 자격취소의 처분을 받게 된다. 일정 기간 사고 기사의 승무를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발상에 노동계는 물론 사용자측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노동계는 “승무정지에 따른 임금손실이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처벌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고, 사용자들은 “안 그래도 운전기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데, 자격정지가 이뤄지면 인력난이 심화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가 제도를 강행할 경우 연맹은 전면적인 승무거부에 돌입할 태세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연맹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주익 위원장은 “전국적인 승무거부에 들어갈 경우 현행법상 불법파업에 해당하지만, 불법이냐 아니냐보다는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가 무리한 탁상행정으로 불법을 유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파업이냐 아니냐보다, 조합원 생존권이 중요"

국토부가 추진하는 버스기사 운전자격제도의 취지는 버스운전자의 전문성 확보와 자질 향상을 통해 안전사고를 줄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강한 처벌제도를 함께 도입하기로 했다.

“자격제도 도입 취지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국토부가 처음 제도를 들고 나왔을 때 반대하지 않았던 거고요. 문제는 무리한 처벌제도입니다. 국토부는 버스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버스기사만 잡으려 하고 있어요.”

연맹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버스기사들은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배차시간 부족(52.8%)·과로(14.5%)·운전자 법규 위반(12.7%)·도로구조 및 교통시설 미비(7.8%) 등을 꼽았다.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달리는 대중교통수단입니다. 배차운행시간과 교통신호·도로혼잡도·불법주정차 여부에 따라 운행여건이 달라지죠. 정부도 사업용자동차 교통사고의 원인을 장시간 운전과 도로시설·구조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격제도 도입을 앞세워 과도한 벌칙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버스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한 채 처벌을 통해 모든 문제를 풀겠다는 발상에 불과합니다.”

연맹은 국토부가 밝힌 처벌제도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명료하다. 처벌제도를 추가로 도입하지 않아도 이미 사용자나 지자체로부터 이중삼중의 처벌조항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시의 경우 버스회사에 대한 평가점수(2천점 만점)에 차량사고지수(100점)·서비스 만족도(300점)·버스운행실태(200점)를 반영해 법규 위반이나 서비스 실태를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업체의 사용자들은 기사들이 교통법규 등을 위반해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 시말서 제출·승무정지·해고 같은 처벌을 가하고 있다. “연맹은 최근 전국시·도대표자회의를 열어 정부가 법 개정과 제도 도입을 강행할 경우 전국적인 승무거부에 돌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오는 24일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더 높은 수준의 결의를 하고, 조만간 전국시·도대표자회의를 재소집해 승무거부일을 정할 예정입니다.”

연맹이 국토부의 방침에 반발해 승무거부에 돌입하면 교섭과 조정을 거치지 않는 불법파업에 해당한다. 김 위원장은 “불법파업이냐 아니냐보다는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가 무리한 탁상행정으로 불법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벌칙조항의 문구 일부를 수정하는 수준의 협상에는 응할 생각이 없다”며 “정부는 노사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벌칙조항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공영제 도입 후 교섭패턴 바뀌어 … 복수노조 영향은 미미"

인터뷰가 진행된 16일에는 연맹 산하 서울시버스노조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막판 협상을 벌였다. 기본급 9.5%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와 기본급 3.5% 인상을 내세운 사용자의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버스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서울의 경우 버스 운송에 소요되는 원가를 결정하는 서울시가 실질적 사용자 지위에 있다. 이런 구조에서 개별 사업장 노사의 자율교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준공영제가 왜 도입됐습니까. 버스기사가 예뻐서 상 주려고 도입했습니까. 그게 아니죠. 준공영제는 버스환승제도와 연계해 시민들을 대중교통으로 유인하기 위해 도입된 겁니다. 교통요금을 할인해 줌으로써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이를 통해 교통혼잡도를 완화해 도시 전체가 좀 더 쾌적한 환경이 되도록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 맹점이 있어요. 버스노동자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시가 쥐고 흔들게 됐다는 점입니다.”

실제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업계의 노사협상 패턴이 크게 달라졌다. 사용자들은 지자체장에게 책임을 미루고, 지자체장은 사용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발을 빼는 이른바 ‘핑퐁게임’이 연출된 것이다.

“거창하게 준공영제라고 하니까 버스기사들이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신분이나 처우의 변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임금협상에서 사용자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요. 노동자들만 속이 터지는 상황입니다. 연맹은 수년 전부터 노사정이 참여하는 버스제도개선위원회 운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답이 없어요.”

버스업계는 지난해 7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시행 이후 신규노조 설립이 활발했다. 버스노동계에서 주도적 지위를 유지해 온 연맹의 위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연맹 소속 노조가 전국 500여개 사업장에 설립돼 있어요. 이 중 100개 사업장에 신규노조가 만들어졌는데요. 민주노총으로 분화된 노조가 56개(조합원 613명), 국민노총이 7개(149명), 중도 조직이 37개(1천100명)입니다. 신규노조로 갔다가 다시 연맹으로 돌아온 조합원도 있고요.”

연맹 조합원이 약 8만명인 것에 비춰 보면, 조직률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신규노조로 교섭대표권이 넘어간 곳은 장기 분규를 겪은 인천 삼화고속과 전주 시내버스 중 일부 업체다. 해당 지역은 노-노 갈등의 여진이 계속되는 곳이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조합원의 이익 증대에 기여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면 현재의 갈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시곗바늘 고장 난 한국노총 … 위원장이 결자해지해야"

자동차연맹은 한국노총 현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운수물류총련 소속이다. 김 위원장은 정치방침을 둘러싼 한국노총의 내홍을 ‘시계바퀴 이론’으로 설명했다.

“시곗바늘을 돌리는 톱니바퀴는 각각 아귀가 맞게 돌아야 시침·분침·초침이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톱니바퀴 하나만 헛돌아도 각각의 바늘이 엉뚱한 곳을 가리키게 되죠. 지금의 한국노총이 그렇습니다. 조직이 사분오열돼 있고, 한국노총이 설립된 이래 정기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습니다. 위원장의 독선적 리더십이 불상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는 한국노총이 정치방침 그 자체는 물론 정치방침을 결정하는 과정 모두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현 집행부가 ‘노동 포퓰리즘’을 내세워 정치방침을 관철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정치위원회 같은 의결기구를 개최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노총 산하조직들의 참여가 배제된 가운데 정치방침이 결정된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노조법을 개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면 과연 누가 반대를 할까요. 당연히 모두 찬성합니다. 이것이 노동 포퓰리즘입니다. 그런데 노조법 개정은 어느 특정 정당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민주통합당과도, 새누리당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할 때 노조법 개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현 집행부는 독단적으로 정치방침을 밀어붙였어요.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한국노총이 ‘식물 노총’으로 전락해 버렸어요. 지도부가 조직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입니다. 위원장이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