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외환위기로 야기된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시련은 실업문제와의 치열한 싸움이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실업인구가 무려 107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짐작할 수있다. 더욱이 해마다 적체되어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대졸 실업자의 양산은 결코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의미하듯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실업자 수가 너무도 짧았던 경제회복기를 지나 다시 10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또 다른 실업사태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적된 대졸 실업자의 수만 해도 30만명을 육박하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우수한 전문인력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로‘취업 엑서더스’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시절,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교육받은 인력자원을 성공적으로 조직화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결집시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던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20~30대의 고급인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 나라 첨단 과학발전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속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대덕연구단지의 젊은과학자들까지도 불안하고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해 한국을 등지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천명에 이르는 인재들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또다른 그림자임을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최고 교육기관에서 학위를 받은 고급인력들이 사회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봇짐장수’처럼 노동시장을 방황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크나큰 손실이다. 더욱이우리의 사회조직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급인력의 낭비는 그것 자체의 문제로만 끝나는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대학생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어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소중한 과정보다는 오직 성공만이 최선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사회적인 병리 현상의 징후를 빚고 있다. 가령, 얼마전에 보도된 원조교제를 한 전교 수석 여학생의 수치심 없는 얼굴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고급인력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작금 우리의 사회환경은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우리나라 대학원 교육 발전에도 적지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위를 받고도 대학 강단이나 사회에서 자신이 설 자리가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느누가 보다 전문적인 학문 탐구를 위한 대학원 진학을 하려고 하겠는가. 최근에 서울대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주요 대학원이 잇단정원미달 사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창의적인 연구를 해서 국가 발전의 산실이 되어야 하는 대학원에 능력있는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공동화(空?化) 현상이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는 곧 국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선진국에 종속된 후진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할 것 없이, 우수한 학생과의 의견교 坪 교수들은 결코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없다. 정부가 다른 국책사업에는 수십조원을 쏟아부으면서도 국가의 장래가 달려 있는 고급인력의 수용에는 너무도 소극적이고 인색하다.

이렇게 고급인력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낭비하는 결과를 방관하고 있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것이어서, 경영능력 부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경제 발전에 있어 최대의 자원은 인간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정확한 판단력을 동원해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적절하게 조직화할 수 있는 인간경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 P F 드러커의 말이 기억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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