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열
변호사
(지식과노동 법률사무소)

이민열 변호사(지식과노동 법률사무소)

최근 박원순 시장의 결단에 따라 서울시는 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2천800여명을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1천133명을 먼저 정규직화했다.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가진다. 첫째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을 해소한다는 의미다. 둘째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 때문에 정규직보다 낮은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차별을 감수하게 되는데, 이러한 차별을 시정하는 목적이다. 첫째 목적이 어느정도 달성된다 하더라도, 기존에 존재하던 불합리한 차별을 항구적으로 유지 ․ 고착시킨다면 정규직 전환의 의미는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2007년 10월에 이뤄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특별한 맥락을 가진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하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돼 민간부문이건 공공부문이건 가릴 것 없이, 고용형태를 근거로 차별하던 종래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정규직화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새로 시행된 법의 준수를 만족시키는 데 필수조건이었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위 법 시행 이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2006년 8월에 발표하고, 그들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것은 2007. 7. 1.에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다는 것을 예정하고 이뤄지던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의 경우,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은 둘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고용형태만을 바꿨을 뿐 근로조건의 불합리한 차별은 상당부분 유지·잔존하게끔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합리한 차별을 사실상 존속시키게끔 하는 조치가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이뤄졌다면, 우선적으로 그 취업규칙 변경의 유효 여부가 다퉈지게 된다.

본 사안의 개요

원고들은 피고 공단의 노동자로서 2007년 10월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피고 공단의 경우 일반직이 될 때에 경력을 환산해 초임 등급과 연봉을 정하는 보수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피고 공단은 원고들을 정규직 전환할 때 이 보수규정에 부칙을 삽입해 그러한 경력 통산 규정이 원고들에게만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비정규직 당시에 적용되던 그대로의 근로조건을 적용토록 했다.

당시 삽입된 보수규정 부칙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제2조(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른 경과조치)
①「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비정규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되는 직원의 초임기본연봉은 인사규정 제42조 및 보수규정 제7조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직원으로 근무시 받은 보수(이하 ‘현보수’라 한다)를 기준으로 산출한 등급의 금액으로 한다.

그 결과 원고들은 종래의 정규직들과 동종 ․ 유사 업무를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초임 등급과 연봉이 현저히 낮은 상태에서 업무를 하게 됐다. 심지어 해당 직급의 최저 등급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게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원고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와 같은 보수규정 부칙 삽입은, 유효하지 못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다. 특히 기존 근무경력의 불산입을 감수하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동의서만을 징구했을 뿐 집단적 동의절차가 없었고, 또 피고의 개입 ․ 간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관계에 대하여 피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차피 비정규직들은 이 사건 인사 ․ 보수 규정과는 별도로 비정규직직원관리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어 위 인사 ․ 보수 규정의 규율대상이 아니므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던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줬으니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득이 된 것이므로 또 불이익이라 볼 수 없다. 그리고 설명회를 듣고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쓴 것도 유효한 동의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정규직 전환에 소요되는 예산 문제 때문에 이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존재한다.”

대상 판결의 내용

이에 대한 대상 판결의 판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비정규직들이 사업장 내에서 별도로 적용받는 비정규직직원관리규칙 등이 있다 하더라도, 성질상 비정규직들에게 당연히 적용이 예상되는 취업규칙은 불이익 변경 시에 집단적 동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질 경우 근무경력 통산을 보장하던 기존 규칙을 배제하는 취업규칙을 삽입할 경우, 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

3) 근무경력 통산을 포기하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을 신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개별동의는 전체가 모여 설명을 듣는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근로자들의 동의 과정에 대한 개입 간섭이며 집단적 동의라 보기 어렵기도 하다.

4) 정부의 방침이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였고, 이에 상응하는 예산과 관련한 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정규직화된 비정규직들에게 종래 적용되던 근무경력 환산을 예산이 더 든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취업규칙을 도입한 것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

본 판결의 의미

이 중에서 3), 4)의 판시내용의 의미에 관하여 살펴보자.

3)과 관련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동의는 집단적 동의이고 사용자측의 개입 ․ 간섭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 2010.1.28. 선고 2009다32362 판결 등에 따르면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로, 사업 또는 한 사업장의 기구별 또는 단위 부서별로 사용자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노동자 간에 의견을 교환해 찬반을 집약한 후 이를 전체적으로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는 이 판례를 개별동의서 징구만 하면 모두 유효한 취업규칙 변경이 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대상판결은 노동자 개인의 신분 변동과 결부시켜서 이런저런 근로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냐에 관해 동의서를 징구하는 것까지 유효한 집단적 동의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4)와 관련된 부분을 보자. 만약 공공부문의 근로조건과 관련해 예산을 이유로 해 함부로 취업규칙 변경을 인정하고, 법정수당을 주지 않게 한다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산이 더 많이 든다는 이유 이외에 취업규칙 변경이 전체 법체계 질서에 오히려 부합한다는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정이 없었다.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는 “비정규직에서 전환해 정규직이 된 직원이라는 이유로 종래의 정규직들과 차별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것”이라고 여러 번 결정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정부도 2007년 당시는 물론 2011년에도 종래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합리적인 고용관행으로 하고 이를 지침으로 삼은 것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내세워 취업규칙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그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므로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32362 판결)을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다.

대상 사건에서 원고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원고들에게 무효라는 점을 일차적으로 주장하고 예비적으로는 강행법규의 차별금지에 위반돼 무효라는 주장을 했다. 일차적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써 예비적 주장에 대한 판단은 명시적으로 내려지지 않았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 판단에 있어 차별 및 이에 대한 시정의 의미와 관련된 사정들은 참작됐다고 보인다. 대상 판결은 향후 유사한 사례에 있어서 유의미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사용자 편의적으로 해석해 근로기준법을 형해화시키는 위험도 견제했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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