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지행)

봄. 주변에서 결혼식 참 많고, 출산율 저하니 뭐니 하지만 태어나는 아기들 또한 참 많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이들에게 축하봉투 건네는 것은, 노동자에게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이 사회에서 잘 이겨 내 보자는 파이팅의 응원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법 중에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법이 있다. 이 법은 남녀 노동자의 평등한 육아 부담을 전제하면서 육아를 이유로 고용상 지위 및 대우에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남성노동자도 여성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법인 것이다.

처음 ‘남녀고용평등법’이었던 이름을 ‘일·가정 양립지원’을 포함한 이름으로 개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읽기도 힘들 만큼 긴 이름을 지어 가면서까지 일·가정 양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만으로 노동자가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와 제도들을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향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틀과 함께 구축된 상시적인 구조조정 불안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 주 40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이지만 고용노동부의 201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 52시간(근로기준법상 허용되는 최대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약 12%, 특히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에는 20%를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자료 수집 과정에서 누락된 표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심각한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로서는 직장에 구속돼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정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객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주어진 시간은 휴식을 취하기에도 모자란 형편이다.

물론 노동자로서는 잔업을 거부하고 법상 권리로 주어진 휴가 등을 사업주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과 외주화 과정에 따른 정리해고 등이 일상화돼 연차휴가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지금의 풍토에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결국 입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사업주의 양심과 배려에 의존해 자율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무리다. 또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개별노동자는 퇴직을 각오하지 않는 한 재직 중에 법 위반을 문제 삼기 두려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법 위반에 대한 사후적인 처리도 문제해결책으로서는 부족하다.

문제해결의 힌트는 원인에 있을 것이다. 기존 양육 노동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노동부의 세심한 사전 감독이 필요하겠고, 사업장에 대한 관련법상의 지원금을 육아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한편 생존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업주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듯이 결혼에 대한 계획이 없는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결혼을 하더라도 양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인구 또한 늘어나고 있다. 결혼 및 출산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박한 즐거움을 나눌 시간·금전적 여유를 주는 것, 일 앞에 가정을 양보해야 능력과 충성도로 평가받는 풍토가 변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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