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4월18일 부산 금정구 지역위원장이 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현장투표와 온라인투표 모두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갈등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무를 맡은 중앙위원회가 5월12일에 개최됐으나 일부 당권파 중앙위원 인사들의 반복된 의사진행발언과 단상점거 그리고 그 과정에 발생한 격심한 몸싸움으로 말미암아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다. 중앙위원회 의장단은 전자회의를 통한 안건처리를 고려하고 있으나, 이 방식으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갈등요인만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부정과 관련한 문제는 이념이나 노선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사실관계만 파악하면 되는 지극히 간단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왜 이러한 문제로 격렬한 몸싸움을 동반하는 갈등을 겪고 있을까.

우선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잘못된 대응방식을 택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진상조사를 주도했던 비당권파의 경우 당 내부 문제를 지나치게 빠르게 그리고 당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외부(언론)에 알림으로써 당내에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 버렸다. 이러한 행동은 당권파가 장악하고 있는 공식의사결정기구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세력의 개입과 간섭을 초래해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해 당권파가 공식 진상조사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의사진행 방해와 단상점거 등과 같은 극단적인 대응방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야 할 방법이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 내외로부터 ‘일방적이고 집중적인 비난’을 받아 자신들이 부당하게 고립되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이미 도덕성도 명예도 다 잃어버린 판국에 비당권파의 대응방식에 순순히 따를 경우 주도권은 물론 존재마저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극한적인 위기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용납된다는 뜻은 아니다. 더구나 비당권파의 ‘폭로’와 대응방식을 유발한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더욱 그렇다.

다음, 통합진보당은 정파 간의 상호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념이나 노선 또는 조직문화를 가진 두 개 이상의 조직이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권력의 ‘공평한’ 배분, 합의된 의사결정규칙 준수, 상대방의 존재 또는 정체성 인정, 과거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한 편견과 상처 해소 등 최소한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합당 이후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때는 두려움 등과 같은 격한 감정이 생겨 실수를 하거나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등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듯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한 템포 늦춰 격한 감정을 가라앉힌 뒤 대응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이 점에서도 미숙했다. 의혹 제기 이후 쌍방은 조금이라도 늦게 대응하면 패할 것처럼 숨쉴 틈 없이 공방전을 벌였다. 그 결과 합당 이후 쌓인 감정과 불신이 심화됐고, 진보진영은 물론 당의 (전체) 이익조차 볼 수 없게 됐다.

지금의 사태를 보면, 통합진보당이 옛 민주노동당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지배적인’ 정파가 그간 ‘소수’ 정파들과의 공존과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눌러 당권과 공직을 내가 갖겠다는 생각과 행동을 보여 준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한 지배 정파에 대한 불신과 상한 감정을 가진 소수정파들이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대중적 공분을 이용해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력화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이로 인해 격렬한 갈등이 발생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각 정파는 스스로 그리고 솔직히 물어보자. 국회의원이 됐으니 상대가 더 이상 필요 없는가. 진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상대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공존과 협력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변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바뀌면 어떨까.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ytjung@inha.ac.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