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의료 민영화 저지를 위해 영리병원을 막아야 하는 싸움이 긴급해졌다. 지난달17일 정부가 해외병원의 외국의료기관 운영참여 의무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이어 보건복지부가 같은달 30일 관련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이번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영리병원 설립과 큰 관계가 없어 보인다. 시행령은 그저 경제자유구역 내 해외병원의 설립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행간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보다 명확해진다.

의료법상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은 한국에서 병원을 세울 수 없다. 그리고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이른바 ‘영리병원’을 세울 수 없다. 그런데 2002년부터 이뤄진 규제완화로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외국인 투자지분이 50% 이상’인 영리법인도 병원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이번 시행령·시행규칙 제·개정 전에도 존재하던 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법이 존재했어도 지난 10년간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 설립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경제적 수지 타산이 맞지 않고 시장의 불명확성이 커서 이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자본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인천 송도에서 일본 다이와증권 계열사가 지분의 60%를 가지고, 삼성증권·삼성물산·KT&G 등 국내기업이 40%의 지분을 가진, ISIH(인천 송도 국제병원) 컨소시엄이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우선 협상권을 따낸 후 사태가 급진전됐다. 이는 말이 외국자본이지 사실상 외국투자지분을 확보한 삼성자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이명박 정부가 삼성 자본을 위한 길을 터줬다. 그것이 이번 시행령·시행규칙 제·개정이다. 시행령·시행규칙이 통과되면 인천 송도에서 삼성자본의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자본의 인천 송도 영리병원 설립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올해 6월 관련 허가 승인 절차를 진행해, 오는 11월이나 12월에 병원 준공을 위한 첫삽을 뜨겠다는 게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해당 자본의 목표다.

정부는 인천 송도만의 문제이고,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이 도입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6군데의 경제자유구역이 있고, 특구로 지정된 제주도까지 합하면 7곳에서 이 법 개정안에 따라 외국인 투자 국내자본이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다.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이 세워질 수 있는 기틀이 닦여 있는 것이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진료비도 높고, 의료서비스 질도 떨어진다.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영리 추구 위주의 진료행태로 인해 다른 비영리 병원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되면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부유층만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이 출시되고, 그 여파로 건강보험 체계에 위협이 된다. 의료양극화가 심화되고 단일한 건강보험 체계가 파탄 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미FTA와도 얽혀 있다. 한미FTA 협정문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 내의 영리병원 관련 법 제도는 협정 체결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 설립이 가시화되면, 그 폐해가 드러나더라도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이제 국민들이 나서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꼼수를 막아야 한다. 철도노조와 국민들이 나서 KTX 민영화 시도에 강력한 저항을 한 것처럼, 보건의료 관련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국민들이 모두 나서 영리병원 설립 구체화로 나타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 시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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