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대전충남법률원)

대전의 한 택시사업장에 전국민주택시노조 분회가 조직돼 있다가 지난해 7월1일 복수노조 제도 시행 이후 같은해 8월 새로운 기업별 노조가 설립됐다. 2012년도 임금교섭을 위해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됐고, 단지 3명의 조합원수 차이로 민주택시는 교섭권을 새로운 기업별 노조에 넘겨주게 됐다. 과반수 노조로 교섭권을 확보한 기업별 노조는 사측과 한 달여간 형식적 교섭을 진행하더니 2012년도 임금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일 사납금을 5천원 인상하고, 임금협약에 정한 통상임금은 약 1만7천600여원에서 1만2천120원으로 줄인다. 임금협정의 유효기간은 2년이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임금교섭이 아니라 오히려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교섭이었고, 차라리 교섭을 아니함만 못한 내용이었다. 더구나 교섭대표노조로 임금교섭을 진행한 기업별 노조와 민주택시 분회 조합원들의 근무형태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는데, 하나는 1일 8만원의 사납금을 입금하고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는 경우이고(정식기사), 다른 하나는 1일 4만원 정도의 사납금만 내고 나머지 운송수입금은 모두 택시기사의 소득으로 하는 경우였다(일용기사). 민주택시 분회의 조합원들은 대부분 전자의 근무형태를 취한 반면 새로 설립된 노조에는 후자의 근무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섭대표노조인 기업별 노조와 회사는 새로 체결한 임금협정을 민주택시 분회 조합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식기사들에게만 적용해 1일 8만5천원을 입금하도록 한 반면 일용기사들에게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통상임금 역시 일용기사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결국 민주택시 분회 조합원들은 1일 사납금 인상만으로도 월 13만원 정도의 임금이 삭감되는 결과가 됐고(기회비용을 따지면 그 이상일 것이다),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소득수준을 고려할 때 이는 도저히 수용불가한 내용의 임금협약 개악이었다. 조합원들은 회의를 거쳐 개악된 임금협약을 따르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에 회사는 사납금 인상분을 조합원들의 임금에서 임의로 공제하고, 임금협약 준수 거부를 주도했다며 20여년을 재직한 분회장을 징계해고하기에 이르렀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되고 난 후 현장에서는 많은 혼란이 발생해 왔고, 이제 그 해악이 현실화돼 나타나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창구단일화로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소수노조를 위한 충분한 제도적 보완이 갖춰져 있다며 합헌이라고 결정했다는데, 실제로는 위 택시사업장의 경우와 같이 노조라는 이름을 얻어 교섭권을 빼앗고는 스스로 ‘사용자’ 노조임을 자인하는 형용모순의 행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헌재가 보지 못한 또는 보지 않은 현실의 노동현장에서 소위 ‘제도적 보완’은 그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헌재의 이런 결정은 결과적으로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의 전면적인 개폐에 긴급하게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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