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PD연합회 주최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방송의 위기' 토론회에서 윤성도 KBS 피디가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08년 촛불시민은 다 어디 갔나. 전 사회적으로 체념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사 동시 연대파업은 또 다른 6월 항쟁을 불러올 수 있는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이다.”(최용익 MBC 기자)

5개 언론사가 동시에, 한 언론사는 100일 넘게 파업을 벌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최근 언론사들의 파업은 70년대 동아투위,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언론인 대량해직과 언론사 강제 통폐합에 맞선 투쟁에 이어 한국 언론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시작된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은 9일로 101일째, KBS본부의 파업은 65일째다. 파업이 장기화함에도 불구하고 파업 참가자들의 결의가 꺾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장기파업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PD연합회가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영방송의 위기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과거와는 다른 파업 양상=권혁만 KBS PD는 “과거의 파업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먼저 파업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자발성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권 PD는 “과거에는 노조 집행부에서 파업 참가를 독려했지만 이번 파업은 신입부터 고참까지 현업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MBC와 KBS 모두 노조 파업보다 기자회의 제작거부가 먼저였다.

권 PD는 “과거 같으면 파업이 장기화하면 지도부 교체 등 내부 파열음이 들렸을 텐데 단일한 대오로 장기 투쟁하고 있는 것도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파업 중에도 MBC 노동자들은 ‘제대로 뉴스데스크’, KBS 노동자들은 ‘리셋 KBS 뉴스9’를 제작해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권 PD는 “언론 역사상 초유의 연대파업은 사장 퇴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며 “헌법과 방송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본질적인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PD수첩의 수난=강지웅 MBC본부 사무처장은 지난 2년간 PD수첩의 역사를 ‘보복인사·사전검열·불방조치’이라는 3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지난해 3월 시사교양국에 윤길용 국장이 부임하면서 PD수첩 제작진 11명 중 6명이 교체됐다. 시사교양국은 지난달 4월 조직개편으로 해체되기까지 했다. 강 사무처장은 PD수첩에서 불방된 아이템으로 △남북경협 중단 1년 점검 △한진중공업 사태 △복수노조 시대, 삼성 노조간부 해고 파문 △4대강 공사현장 잇따른 사망사고 등을 예로 들었다. 파업 중이던 올해 2월에는 비조합원인 김영호 PD가 한미 FTA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해외출장까지 다녀왔지만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영진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방송을 내보내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보체제’ 구축한 KBS=KBS에서 낙하산 사장의 ‘방송장악 논란’은 2008년 8월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고 이병순 사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이 사장은 부임 직후 ‘시사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를 폐지하고 탐사보도팀을 해체했다. 이듬해 1월에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 공동대표인 기자협회장과 PD협회장을 파면했다. 그러던 중 같은해 11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방송전략실장이었던 김인규 사장이 부임했다. 윤성도 KBS본부 정책실장은 “90년 방송민주화 대투쟁 이후 정치권 인사가 KBS 사장이 되는 것은 금기시돼 왔는데 김인규 사장의 등장으로 사회적 합의가 깨졌다”며 “김 사장이 KBS에 입성한 후 KBS는 급속도로 관제·편파 방송으로 변해 갔다”고 말했다.

'추적 60분'의 4대강 관련 방송은 이유 없이 2주간 불방됐고, 쌍용차 파업 등 시사 이슈를 많이 다루던 ‘생생정보통'은 외주제작국으로 넘어갔다. 윤 실장은 “김인규 사장은 전횡을 넘어 특보 체제를 구축했다”며 “김 사장이 나가더라도 특보 체제를 청산하지 않으면 공정방송 회복을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새누리당, 파업사태 해법은?=권혁만 PD는 “파업사태를 해결할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방송사를 지휘·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청와대·새누리당”이라며 “이들은 파업에 대해 한결같이 '방송사 내부 문제'라며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승수 언론정보학회장은 파업사태 해결방안으로 △여야 합의로 공영방송 정상화와 개혁을 위한 국회 결의안 채택 △사장 선임과 예결산·노사문제 등이 발생했을 때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가 3번의 토론을 거친 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사퇴 △공영방송사 내부적으로 사장을 감시·견제·견책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제안했다.

민주통합당 언론정상화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냐”며 “개원 협상을 통해 언론탄압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청문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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