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통합진보당이 부정선거 사태로 난리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진보정당이 이렇게 언론의 집중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선거 부정의 진실에 대한 공방부터, 비례대표 1~3번 사퇴 여부, (경기동부연합이라고도 칭해지는) 속칭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책임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생산적 논쟁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통합진보당을 진흙탕으로 내팽개치는 양상이다.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개혁 성향의 언론들도 모두 통합진보당에 대해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어떻게 끝나더라도 꽤 오랜 기간 통합진보당에는 상흔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갈등이 매우 첨예하지만, 잠시 현재 사태에 거리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권파가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를 사퇴한다 하더라도 과연 통합진보당에서 무엇이 변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사태가 수습이 되고, 당내 선거와 관련한 몇 가지 체계가 정비되겠지만, 정당의 가장 중요한 지점인 대중과의 관계가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아서다.

통합진보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부터 생각해 보자. 민주노동당이 처음 만들어진 배경은 노동자들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과 꿈이었다. 지역에서 아무 가진 것 없이 지구당을 만들고, 노동조합에서는 열성적으로 당원을 모집했다. 의회주의 정당, 제도화된 정당이라는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출범부터 2004년 총선 이후까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꿈을 동력으로 움직이던 정당이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그 시작부터가 노동자들의 열정·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합진보당은 그 시작부터 정당의 대표로 노동운동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정치인 변호사와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동당은 안 된다”, “노동조합은 후지다”며 소리를 높였던 정치인을 내세웠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에게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여야 정권교체를 위해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우리의 대표를 국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이 될 실용적인 정치적 선택을 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민주노총 역시 논쟁 속에서 지지정당을 정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총선 지지정당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의 비극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이 누가 되든지 노동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닌 여야 교체의 프레임에서 누가 국회의원이 되던 상관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남는 것은 정파들 간의 피말리는 후보 경쟁뿐이다.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비당권파·참여당계·진보신당 이탈파 등등 이런저런 정치세력들의 경쟁만 있을 뿐이다. 노동자 대중조직의 견제, 노동자들의 참여는 부차적인 것이 됐다. 그리고 이런저런 세력들을 얼마나 동원하느냐에 따라 국회의원 숫자가 정해지는 판에서 이판사판 식 부정선거도 가능했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창당 초기부터 이런저런 선거 관련 시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에도 지금처럼 사태가 ‘막장’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대중들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당선된 후보들이 민주노조 ‘운동’,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의 참여와 견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 대중의 참여도, 정치세력화의 열정도 사라진 채 한 정파의 숨겨진 실세가 국회의원이 되는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어떻게 정리되든, 이제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되돌아볼 때가 됐다. 이전부터 수많은 문제제기가 있어 왔지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봉쇄돼 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근본적 평가와 현재의 통합진보당을 넘어서는 정치세력화 운동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온갖 미사여구와 진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포장된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다시 열정과 투쟁으로 건설해 낼 노동자들의 정당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됐다. 노동조합의 파업을 엄호할 수 있고, 노동운동의 역사와 투쟁을 제도정치에서 대변할 정치인을 만들 수 있고, 노동해방 세상에 대한 열정을 민주적 결정을 통해 현실 정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런 정당 말이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는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열정과 참여가 사라진 곳에서 정파만 남아 움직이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결국 사태의 해결은 다시 대중적 열정과 참여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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