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1.21 목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노노모의 노동에세이
또다시 관치농협으로 만들려는 정부
정윤각
공인노무사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
법규실장)

오월이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역사로서 살아 숨쉬기에 뭔지 모를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바로 그 오월이다. 오월 첫날은 세계노동절로 시작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산업노조 농협중앙회지부는 노동절 다음날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서대문 본점 앞에 투쟁천막을 설치했다. 그 과정에 엄청난 몸싸움이 있었지만 기어코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 중이다. 그 속사정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농협지부는 농협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를 저지하고 농협법을 개정하기 위해 지난해 말 총투쟁을 전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올해 3월2일 농협중앙회는 농협법 시행에 따라 조직이 분리됐다. 50여년간 이어져 온 종합농협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됐다.

농협 신경분리는 농협개혁의 일환으로서, 특히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애초 2017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MB정부의 주도하에 5년 앞당겨졌다. 그 목적사업 추진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농협법 제9조제2항에 의거해 “국가가 농협중앙회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 경비를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법적 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협이 정부에게 스스로 자금을 요청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농협중앙회에 ‘경영개선 이행약정서’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법을 살펴보면 “보조금의 교부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에게 경영사항에 대한 관리·감독권까지 부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해당 관서인 농림부는 지원금 교부 목적 수행에 필요한 지도와 지원금 집행관리자로서의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정부가 농협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기업의 구조조정에 지원되는 공적자금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농림부가 경영개선 이행약정서 체결 요구의 근거로 삼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어디에도 "경영개선 이행약정서를 체결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무런 법적 권한도 명분도 없는 단지 권력자의 횡포인 것이다.

올해는 ‘세계협동조합의 해’다. 협동조합은 단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쟁기업과는 다르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이익과 가치증진을 위해 설립·운영되는 조직이다. 최근 사회공공성 확대에 가장 적합한 역할모델로 사회적 기업과 더불어 가장 주목이 되는 대안기업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얼마 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고 연말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협동조합 운영의 기본 원칙은 자율성과 민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침해되면 바로 존립근거인 공동의 이익과 가치증진 실현이 어렵게 되므로 이를 법적으로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농협법 제9조, 부칙 제3조 그리고 새로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 제10조에서 동일하게 "국가는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협은 협동조합의 대표조직으로 50년 이상 이 땅에서 그 자리를 지켜 왔다. 그 세월 속에서 농협은 많은 풍파에 시달렸다. 이러한 농협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신경분리가 조직의 자구력에 의해 이뤄져야지, 정부의 입김에 좌우된다면 농협의 정신인 협동조합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농협지부의 투쟁이 ‘제 밥그릇 챙기려는 게 아니냐’, ‘농협은 농민의 대표조직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제몸 부풀리기에 앞장서서 거대공룡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과거 군부정권이 농협을 관변단체로서 좌지우지하고, 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온갖 부정으로 얼룩진 그 잘못된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농협개혁은 지난 시기의 반성을 통한 환골탈태의 정신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또다시 정부가 지원금을 미끼로 관변단체로 만들려고 하는 수작은 진정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한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일반 사기업과는 다르고 또 공기업과도 다르기에 농협지부의 투쟁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농협 신경분리 저지투쟁이나 현재의 농림부만행 규탄투쟁 모두 일차적으로는 농협조직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조직분할과 경영간섭으로 인해 예상되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대정부와 대사용자 모두를 상대해야 하기에 고도의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는 노동조합으로서 한계에 부딪힘을 지난 숱한 투쟁에서 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지부는 또다시 끝이 안 보이는 투쟁을 시작했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오월, 그래도 오월이다. 오월의 숭고한 정신을 받아 가열차게 투쟁하고 있는 농협지부의 투쟁에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정윤각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윤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