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저녁 민주노총 산하 16개 산별노조와 연맹이 공동주최한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권용희(가운데) 민주연합노조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조현미 기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와 이로 인한 당내 갈등과 분열은 노동계 입장에서 남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없어지면서 당과의 배타적 지지관계가 논란이 됐지만 지난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선거에 집중했다. 다수의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등 적극 결합했다. 통합진보당의 갈등과 분열의 불씨가 자칫 민주노총 내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4·11 총선을 앞두고 총선방침은 만들었지만 정치방침 결정은 총선 이후로 미룬 상태다. 따라서 정치방침에 대한 논란이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산하 16개 산별·연맹이 4·11 총선을 평가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민주노총이 아닌 16개 산별·연맹만 모여 따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이례적이다. 16개 산별노조·연맹은 지난 3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4·11 총선 평가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상진 화학섬유연맹 위원장과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이 사회를 보고, 산별노조에서는 권용희 민주연합노조 사무처장과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 조상수 공공운수노조·연맹 수석부위원장이 공동발제를 맡았다. 정당에서는 심재옥 진보신당 부대표와 이의엽 통합진보당 19대 총선 선대본부장이 맡았으나 이 본부장은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이상진 위원장은 "총선 평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며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파업 조직도 중요하지만 총선 과정과 결과가 총파업 전선을 만들어 가는 데 주요하게 작동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혜를 모으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의정부을, 이정희 대표 한 번도 안와"



이번 선거에서 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의정부을)의 선거운동을 직접적으로 진행한 민주연합노조의 권용희 사무처장은 "중앙당의 선거전략 계획과 집행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 3천명 중 무려 2천명이 홍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30~40명의 노조 간부들은 16일간 공동으로 숙식하며 선거운동을 벌였다. 홍 의원은 45.46%를 득표해 홍문종 새누리당 당선자(득표율 49.07%)에 아깝게 패했다. 권 사무처장은 "의정부을의 경우 중앙당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며 "통합진보당 도의원 후보들의 단일화 지연과 돌출행동, 민주노총 일부 사업장의 비협조라는 악재에도 선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의정부을에서 대등한 득표로 선전해 만들어진 진보정치·노동자정치의 성과를 이어 갈 후속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거 때 언론은 당대표의 동선을 따라 보도한다. 그런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의정부을에 한 번도 유세를 오지 않았다고 했다. 권 사무처장은 "수도권의 유일한 현역의원이며 1%를 대변하는 청소부 국회의원에 대한 지원부족은 노동 중심 진보정당이라는 당정신과 맞지 않다"며 "반면 박근혜 위원장은 두 차례 방문해 보수층이 결집했다"고 비판했다.

조합원 5천여명의 조합원을 집단가입시키며 나순자 전 위원장을 비례대표 후보로 낸 보건의료노조는 총선 결과를 보고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우리 조직은 나름대로 준비된 후보도 있었고, 준비된 의제도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달려들었지만 통합진보당은 그런 당이 아니었다"며 "우리도 정치활동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다"고 평가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 쟁취해야"



나 후보는 '대리정치'에서 '직접정치'를 내걸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유효 당권자 7만4천794명 중 4만1천672명이 투표한 결과 나 후보는 4천491표(득표율 11.02%)를 얻어 여성명부 중 3위, 전체 15명 후보 중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당이 개방명부 3명과 청년 1명, 장애 1명 등을 당선권에 우선 배정하면서 나 후보는 11번으로 밀려났다.

이 단장은 "진보정당으로서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들의 중심성이 전제되지 않은 조건에서 외부 30% 개방과 청년·장애를 우선 순번에 배정하는 것이 과연 진보정당의 원칙에 맞는지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가 정치를 하려면 지역도 전략적으로 선정해서 준비해야 한다"며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쟁취하는 게 산업별 요구를 실현하는 데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제도를 노동자의 힘으로 쟁취하면 정치세력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단장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직선제를 앞두고 있는 민주노총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안전한 시스템이 되려면 막대한 돈과 사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향하는 사회부터 근본적으로 토론하자"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예전에 백기완 대통령 후보가 나왔을 때는 명확하게 지향하는 사회가 있었다"며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평등당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지향하는 것을 전면에 내걸고 주체를 모아 가고, 연대·연합부터 하면서 상처를 다독이면서 신뢰를 회복하자"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연맹 총선기획단장을 맡았던 조상수 노조·연맹 수석부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실·부정선거를 두고 민주노총이 민주주의와 도덕성과 관련해 당 쇄신을 요구했는데, 그에 앞서 민주노총에는 그와 같은 문제가 없었냐"고 반문했다. 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투표를 통합진보당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도는 덜 하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총선 전에 민주노총이 왜 진보정치 대통합과 진보정당 건설에 실패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총선 이후 지속적인 노동자 중심 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면서 길게 보고 총선방침을 세웠어야 했다"며 "민주노총의 자주적인 정치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노총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못했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통합하지 못한 것"이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말했다.



"진보정당 왜 분당됐나 원인부터 따져봐야"



4·11 총선에서 구로을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심재옥 진보신당 부대표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토론에 참여했다. 진보신당은 이달 말까지 토론을 통해 총선을 평가하고 향후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심 부대표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 진영이 훌륭하다는 칭찬은 있었지만 정당 지지를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며 "1년 내내 진보정당 통합이라는 논쟁에 시달리고 지도부가 탈당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기본으로 하면서 진보신당 배제전략이 작동했다"며 "야권연대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깨고 자기 정치를 알려 내는 전략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심 부대표는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노동정치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08년 복수의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면서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에 가졌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페기됐어야 한다"며 "배타적 지지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 가려고 했던 의도가 조직 내 갈등을 일으킨 것은 대단히 큰 실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부대표는 진보정당 통합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왜 분당되고, 통합을 주저하는지 원인과 대책을 실피는 노력이 선행됐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통합이 대의라는 방식으로 조합원 서명운동 등을 통해 물리적 통합을 밀어붙이는 데 힘을 쏟았다"고 지적했다.

심 부대표는 "복수의 진보정당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독자적 정치방침을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진보정당과 협력·긴장관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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