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석 기자
"20년간 노조활동에 관심이야 있었지. 그런데 노조간부 2년 동안 배운 게 훨씬 많아. 지점에 있을 땐 자고 나면 일하기 바쁘니까 관심이 있어도 둘러볼 시간이 없었어."

50대 문턱에 들어서야 겨우 노조활동을 시작했던 금융권 노조의 한 간부는 언젠가 기자에게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놨다.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노조활동에 관심이 있었는데, 참여할 여유가 없었고 노조간부가 돼서야 이것저것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그는 20년의 세월을 아까워했다.

노조활동이나 노동운동은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는 게 보통이다. "파업이나 선거 때나 조합원을 찾는다"는 푸념이 노동계에서도 나온다. 그렇다고 간부나 활동가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노동계의 주요 세력인 제조업(완성차)이나 사무직(금융권) 노동자 대부분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러니 노조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 최근에는 노동정치 확장을 위해서라도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말만 무성하던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올해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완성차 노사는 올해 주야 맞교대 개선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고용노동부는 국회가 열리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우려도 크다. 노사는 생산성과 임금 문제를 두고 알력다툼이 심하다. 근기법 개정은 경영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까딱하다간 어느 하나 건지지 못하고 올해 역시 그냥 지나갈 판이다.

주 40시간제(주 5일제) 도입 이후 경험했듯이 노동시간단축은 삶의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생산성 향상·산재위험 감소만이 아니라 가정생활을 돌보고 다양한 취미나 사회활동에 참여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준다. 조합원의 참여가 늘면서 노조활동 활성화나 민주화 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노동계의 활동은 아쉬운 측면이 많다. 완성차 노사의 교대제 개편논의를 오래 지켜본 노동계의 한 전문가는 “임금보전을 전제로 내놓는 것은 노동시간단축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임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제에 매몰돼 본질을 놓칠까 우려스럽다는 뜻이다. 그동안 노조가 그랬다는 말이다. 근기법 개정도 큰 틀에서는 노동계와 정부의 이해가 같지만 노동유연화 같은 세부내용에서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노사 간 힘의 역학관계나 국회 지형에 따라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노사정이 팽팽히 맞선다면 성과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주간연속 2교대제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의 말은 소중한 경험담이자 의미가 깊은 이야기로 들린다. "노동시간단축, 먼저 시행하고 나중에 보완하자." 4명 중 1명이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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