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연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전지방법원 2011가단28998

1. 사건의 개요

가. 2011년 5월8일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가 광명역 부근에서 과도한 진동과 소음을 일으켜 해당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들은 열차운행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열차승무원은 시속 170킬로미터로 감속해 서울역까지 운행을 계속했다.

나. MBC는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철도노조에 취재요청을 했고,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교육선전국장에게 승객들의 열차운행 중단요구에도 불구하고 열차운행이 계속된 원인에 대해 질문했다. 다음날인 2011년 5월9일 MBC 뉴스데스크에 “KTX가 20분 이상 지연되면 사고처리가 됩니다”(이하 ‘제1표현’). “(그렇게 되면) 직원들이 징계를 당하고 있습니다”(이하 ‘제2표현). “(그래서) 무리하게 열차를 운행했을 가능성이 많죠.”(이하 ’제3표현)라는 인터뷰 내용이 보도됐다.

다. 한국철도공사는 위 조합간부가 허위로 인터뷰를 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 1심 판단의 요지

가. 대전지방법원은 원고의 관련규정이 열차 지연운행을 사고로 정의하고, 사고관련자에 대한 문책 기준을 두고 있는 점,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시 상의 환불기준 등을 종합해볼 때, 제1표현과 제2표현은 전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진실에 부합해 허위사실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또한 제3표현은 객차에서 심한 소음·진동·연기가 발생했음에도 열차 운행을 계속한 점과 관련해 피고가 그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어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 나아가 2011년 상반기에 일련의 철도사고가 발생해 사고 원인 및 재발 방지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된 상황이었던 점,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되자 철도의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피고가 사고 원인 등에 대해서 사고 당일 언론사와 인터뷰한 것이었던 점, 피고의 표현이 철도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법인인 원고에 대해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을 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해 피고의 표현은 위법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3. 이번 판결의 시사점

사실 이번 판결의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것이다.

철도공사는 위 2011년 5월8일자 KTX 광명역 열차사고와 관련해 해당 열차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MBC의 요청을 받아 철도노조가 확인한 결과 실제로는 열차의 견인전동기(일반 열차의 엔진)가 심하게 파손돼 마모됐음이 확인돼 언론에 공개되자, 견인전동기 사진을 제보한 해당 조합원에 대해 해고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같은해 12월19일 2011-176호 결정으로 위 해고처분이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한 불이익조치로서 징계재량권을 현저히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봐 원상회복조치를 명한 바 있다.

본 건의 경우 인터뷰를 한 교육선전국장은 2009년 파업으로 해고돼 해고를 다투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징계처분이 아닌 명예훼손 민·형사 고소고발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한국철도공사가 정작 언론기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유독 노동조합의 교육선전국장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점에서 양자 모두 본질적으로는 KTX 열차사고와 관련해 철도산업종사자인 철도노조의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이른바 전략적 공공참여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의 일환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최근 들어 KTX 열차사고가 증가하자 철도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철도공사가 열차사고의 근본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직원에 대한 책임 전가 식 징계남발로 이를 해결하려하고 있다고 이른바 '징계주의'를 비판해 왔다. 실제로도 재판과정에서 열차사고에 따른 징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4. 한계 및 향후 대책

사회적으로 중요한 ‘철도안전’과 관련해 철도사고 분석가를 비롯한 철도 이해관계인, 철도 이용객인 일반 시민, 언론매체 모두가 다양하게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표명 및 여론형성은 ‘철도사고’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구태여 지적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표현의 자유는 비단 근로조건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의 공공성 확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

현재 공공기관의 경우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일반 사기업의 경우 ‘공익신고자 보호법’(2011. 3. 29. 제정)이 내부고발(공익신고)에 따른 불이익조치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본 건과 같이 사용자가 불이익조치가 아닌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경찰의 소환을 받고, 긴 쟁송을 거쳐야 하고, 자신의 비판이 전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진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입증해야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외국에서 등장하는 ‘공공참여 저해를 목적으로 한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법안(Anti-SLAPP)’의 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법원이 좀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명예훼손 주장의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법리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함께 제고돼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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