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전주시 시내버스 회사들의 직장폐쇄가 40일을 넘어서고 있다. 전북고속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500일이 넘게 파업을 진행 중이다. 제일여객·호남운수·전일여객·신성여객·시민여객 등은 공공운수노조가 지난달 14일 업무복귀를 선언했음에도 직장폐쇄를 풀지 않고 있다. 전북고속은 아예 민주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온갖 구실로 민주버스 소속 노조를 탄압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전북지역 버스자본의 노조탄압에 남상훈 지부장은 50일째 고공 단식농성을 진행 중이다. 남 지부장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두 번째 고공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버스자본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이 노조를 몰아붙이고 있지만 사실 버스노동자들의 요구는 매우 소박하다. 근로일수 축소와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이 주요 요구다. 최장시간 노동, 마구잡이 징계를 통한 자본 손실의 노동전가를 개선하라는 생존권 요구다. 버스업계의 노동조건을 살펴보면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월 노동시간은 238시간에 이른다. 연간 2천856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는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보다도 700시간 가까이 많다. 게다가 긴 노동시간에 더해 숨겨진 무료 노동시간도 상당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노동시간으로 간주하는 구속시간까지 합하면 월 노동시간은 290시간으로 늘어난다. 연간 3천480시간이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의 갑절이다. 독일·일본·미국에서 두 명이 일하는 시간을 한 명이 하는 셈이다. 말이 좋아 노동자이지 이 정도면 노예라 불려도 과함이 없을 정도다.

전주 버스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현행 24일 근무제(1일 2교대 기준, 격일 교대제는 12일 만근)를 22일로 바꾸라는 것이다. 특별하게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이미 많은 시내버스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근무제도다. 이렇게 바꿔도 실질 연간 노동시간은 여전히 3천200시간이나 된다.

그런데 사측은 이마저도 죽어도 못 받겠다며 버티고 있다. 임금 삭감 없이 만근일수를 조정하면 월임금이 인상돼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이는 사측의 엄살에 다름 아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북지역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전국 평균에 비해 11%나 낮다. 서울과 비교하면 임금은 77% 수준이다. 지난해에 이어 직장폐쇄를 3개월 가까이 벌이고 있는 버스자본의 여유를 봐도 버스업체들이 꽤 튼튼한 재정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행률이 급감하고 이에 따라 매출이 줄고 있는데도, 아예 교섭조차 하지 않겠다는 전주 시내버스 업체들의 배짱을 보면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주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버스업체들의 작태에 대해 현금인식기를 버스에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버스업체들이 현금 수입 일부를 빼돌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버스 노동자들의 임금, 버스 요금, 지자체 지원금 등을 감안하면 버스 사업주들이 매년 이야기하는 적자타령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자체 역시 버스사업주들과 결탁해 사실상 세금 퍼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현재 직장폐쇄를 계속하고 있는 전주시내 버스회사들이 기업 공시 대상 기업이 아니라서 자세한 재무제표(공시한다 해도 엉터리 회계일 가능성이 크다)를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정부 통계와 다른 지역 버스업체의 손익계산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전북지역의 버스 1대당 연간 평균 수송인원은 9만8천명이다. 직장폐쇄를 하고 있는 5개 버스회사의 운행버스는 402대다. 전주 시내버스 요금을 감안하면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413억원 정도다. 준공영제를 실시하지 않는 지역에서의 보조금(재정보조금과 유류보조금) 비율을 감안하면 약 100억 이상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전주시의 대중교통, 물류 지원금은 연간 400억원 규모다)

2009년에 전국 시내버스 영업적자가 매출액의 평균 5%(전국평균)인 것을 감안하면 5개 업체는 약 80억원가량의 돈을 남겼어야 정상이다. 지난해 유가 인상으로 인한 영업적자 폭 상승을 감안(경기도 업체의 경우 매출액 대비 18%)해도 30억원 가까이 흑자여야 한다.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정경유착 속에 버스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토호자본이 좀 더 많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회계조작을 통해 사업체를 적자 상태로 만들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북 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은 21세기 한국에서 아직도 19세기만도 못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싸움이다. 복수노조 독소조항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수탈하고, 정경유착을 통해 시 당국으로부터 더 많은 시민혈세를 받아내려는 탐욕스러운 버스자본과의 싸움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미국에서 총파업을 벌인 지 122년이 지났다. 그런데 2012년 한국에서는 아직도 연 3천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줄여 달라며, 50일 넘게 고공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 들불처럼 일어날 때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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