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함께걸음한의원 원장

최공주(68)씨는 3년 전 서울의료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다.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 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이 생소했지만 지인은 믿고 갈만한 병원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치과에 다녀보니 확실히 달랐다. 꼼꼼히 관리해주고 치아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조합원 10% 할인도 받는다. 의료생협 사무실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건강강좌도 들을 수 있다.

전국 200여개 의료생협 구성

최씨와 같이 의료생협을 찾는 이들이 최근 늘고 있다. 동네병원은 믿음이 가지 않고 무작정 대학병원에 가자니 병원비도 비싸고 대기자가 많아 예약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진료를 받을 때도 자세한 설명은 듣기 어렵다.

의료생협은 이런 고민을 일정 정도 해소해 준다. 의료생협은 예방과 환자 중심의 의료기관을 만들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생겨났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만든 협동조합이며 보건예방활동과 건강증진활동, 지역복지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일정 금액을 출자하면 지역주민 누구나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최초의 의료생협은 지난 94년에 만들어진 안성의료생협이다.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확대돼 현재 전국 216곳의 의료생협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합회가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료생협연합회에는 서울·안성·인천·대전 등 15개 지역 의료생협이 있다.

꼼꼼한 진료로 신뢰 주는 의료생협

지난 27일 <매일노동뉴스>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소속 서울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우리네 치과를 찾았다. 서울의료생협은 2002년 설립됐고, 현재 2천300여세대가 가입했다. 서울의료생협은 지난 2008년 사회적기업인증을 받았으며 우리네한의원·우리네치과·우리네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네치과 입구는 여느 치과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진료 대기실 벽엔 환자권리장전이 붙어있고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쓰여있다.

최근 지인의 소개로 서울의료생협에 가입한 최윤경(46)씨는 “집이 종로구라 여기까지 오려면 멀지만 무작정 고가의 임플란트를 권하지 않고 상의해 마음에 들었다”며 “잇몸치료를 꼼꼼히 해주고 어디가 문제인지 세세하게 설명해 줘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우리네치과를 찾는 환자는 대부분 서울의료생협 조합원이다. 의료생협 치과인 것을 모르고 방문했다가 조합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조현식(36) 우리네치과 원장은 “4년 전 의료생협에서 일하게 되면서 적정진료의 수준과 의료수가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치료와 동시에 구강위생관리 등 예방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에겐 의료생협 병원 의사가 주치의인 셈이다.

접근성과 의료서비스 질 부족 한계

의료생협이 주목받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의료생협이 늘고 있지만 전 국민이 이용하기엔 병원 수가 적다. 거주지와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곤 먼 거리에 있는 의료생협 소속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게다가 의료생협은 의원급의 1차 진료기관이다. 경쟁이 가열되면서 1차 의료기관도 시설이 최신화되고 있는 반면 의료생협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의료서비스 질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협동조합 제도를 악용하는 가짜 의료생협도 최근 늘고 있다. 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주민들이 설립한 생협에서는 의사면허 없이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복지사업도 할 수 있다. 이런 이점을 활용해 의사면허 없이 손쉽게 병원을 운영하려는 가짜 의료생협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영리형 가짜 의료생협을 적발한 데 이어 다음달부터 7월까지 전면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의료생협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 의료체계와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1차 의료기관의 좋은 모델인 의료생협이 운동의 차원을 넘어 제도화 돼야 한다”며 “의료생협은 1차·2차·3차 의료기관과 연계해야 하며 1차 의료기관은 일상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주치의제도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1차·2차·3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정립되지 않아 제대로 된 의료공급체계가 없이 환자들이 알아서 병원을 찾아다닌다”며 “예방중심의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는 바람직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공급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진보야당은 의료생협과 같은 주치의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 의료공약으로 전 국민 주치의 제도의 단계적 도입을 내걸었고, 민주통합당은 아동 치과 주치의제 도입을 공약했다.

의료생협 좋은 1차 의료기관 모델 되려면

아울러 의료공급체계 뿐만 아니라 의료수가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 의료기관은 행위별 수가제를 사용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도는 질병에 해당하는 의사의 진료행위, 각종 검사와 물리치료 등을 점수화하고 그 점수에 해당하는 가격을 매겨 책정하는 제도다. 의사가 약 처방을 많이 하고 검사를 많이 해야 수입이 올라가는 구조다.

때문에 과잉진료 논란이 일기도 하고, 의료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질병의 예방 관리는 이뤄지지 않는다.

임 교수는 “나쁜 의사 때문이 아니라 수가제도에 따라 약을 처방하고 진료를 해야 하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행 행위별 의료수가제도는 의사가 과잉진료에 치중하고 적극적인 예방행위를 외면하게 한다. 때문에 예방행위에도 수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는 의료생협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다. 나아가 주치의제도로 이행하기 위한 물적 기반이다. 장남희 서울의료생협 상임이사는 “예방을 위한 의료 활동과 교육 사업에 의료수가가 없다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수가를 치료에 국한하지 않고 질병예방이나 교육, 재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의료공급체계와 의료수가제도의 변화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쉬운 문제도 아니지만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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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재 함께걸음한의원 원장

“지역주민 건강 관리하는 의료생협 많이 생겼으면”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함께걸음의료생협은 장애인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의료생협이다. 함께걸음의료생협은 함께걸음한의원·함께걸음요양센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걸음한의원은 처음 개원할 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을 임대했다. 한의원 입구부터 진료실 안까지 문턱이 전혀 없다. 사무실 임대부터 설계까지 꼼꼼히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지난 25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상재(30) 함께걸음한의원 원장은 “대학생 때 ‘의료생협과 함께 하는 학생모임’에 참가해 의료생협운동이 활성화된 일본도 방문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협동조합이 의료기관을 세우는 게 참신하다고 느꼈고 주민과 밀착한 생활 의료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침구실에 있는 9개의 침대 중 3개는 다른 침대보다 높이가 훨씬 낮다. 이 원장은 “보통 침대는 한의사가 침을 놓기 편한 위치로 만들어졌다”며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 바로 침대로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낮은 침대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보건예방활동도 활발히 진행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지역 사회단체와 함께 의료에 취약한 지역을 직접 방문해 건강검진과 상담을 한다.

최근 조합원들 사이에선 장애인 비만 관리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 원장은 “과격한 운동은 어려우니 가능한 운동 프로그램과 식단을 짜드리고 비만 관련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요구가 바로 피드백이 되는 좋은 예다.

최근 의료생협 설립이 증가하면서 일부는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원장은 “200개가 넘게 생기면서 가짜 의료생협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런 가짜 의료생협 때문에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곳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믿을 수 있는 의료생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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