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은 지난 2010년 6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폭로로 세상에 추악한 얼굴을 드러냈다. 신건·이성남 민주당 의원이 폭로를 주도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게시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사찰하고 경찰에 수사결과 보고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당황했다.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던 이인규 국장은 회의 도중 자리를 빠져나가 자취를 감췄다. 이 지원관의 상급자인 권태신 총리실장은 “(이 지원관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둘러댔다가 여야 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 자리에는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같은달 말 MBC PD수첩 보도를 통해 민간인 사찰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며칠 뒤인 7월5일부터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 자료를 삭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진수 전 주무관이 인터넷에서 이레이저라는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기록을 지웠다. 그러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지운 것이 확실한지 의문이 든다”는 이유로 진경락 전 팀장이 다시 ‘확실한 조치’를 지시했다. 장 전 주무관은 용인에 있던 업체에서 디가우징(강한 자력으로 파일 복구를 불가능하게 하는 작업)을 통해 하드디스크를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대포폰이 사용됐다. 이후에도 회유를 위해 돈을 줬다는 사실이 최근 장진수 전 주무관의 증언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돈은 1억1천만원에 달한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서 2천만원, 이동걸 고용노동부장관 보좌관으로부터 4천만원,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류충열 전 공직복무지원관에게서 5천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매일노동뉴스>가 취재해 보니 이런 민간인 사찰 은폐와 입막음 과정에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노동정책 관련 자문그룹이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불법사찰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던 이영호 전 비서관도 같은 그룹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연구모임을 구성했다. 바로 ‘한국선진노사연구원’이다.

선진노사연구원 임원 '불법사찰 은폐' 관여 의혹

장 전 주무관의 폭로로 가장 먼저 이름이 드러난 선진노사연구원 인사는 이우헌(48) 코레일유통 유통사업본부장(상무)이다. 이 상무는 선진노사연구원 사무총장이었다. 그는 이영호 전 비서관과 동향으로, 지난해 8월8일 이 전 비서관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주려던 2천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 전 주무관은 “(이 상무가) ‘이영호 비서관이 마련해 주신 건데 정말 다른 뜻 없고 자기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아무 걱정 없이 받아서 써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장 전 주무관의 증거인멸 재판이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한 상황에서 대법원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한 입막음용이었다.

이우헌 상무는 이동걸 보좌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했던 4천만원 조달자 중 한 명으로 다시 이름을 올린다. 4천만원은 같은 재판의 1심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2010년 8월 장 전 주무관에게 전해졌다. 장 전 주무관에 따르면 당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변호사 선임비용을 걱정하던 그에게 “노동부 직원이 4천만원을 전달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돈을 전달한 노동부 직원은 이동걸 보좌관이었다.

이동걸 보좌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인규 국장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차에 돈을 모아 주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처음에는 8명이었는데, (실제로는) 6명이 모았다. 1명은 연락이 안 됐고, 1명은 (목표한) 돈이 채워져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보좌관이 낸 돈은 800만원, 이우헌 상무가 낸 돈은 1천만원으로 알려졌다.

4천만원 모금에는 전혜선(49) 열린노무법인 대표노무사도 참여했다. 전 대표는 현재 선진노사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핵심 멤버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 몫까지 2천만원을 냈다”며 “교수와 노무사 등 20여명이 함께하고 있는 모임 차원에서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매일노동뉴스>는 열린노무법인 사무실과 전 대표 휴대전화로 10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 대표는 삼성SDS 등 삼성 계열사와 건설회사의 산재보험 관련 소송에서 사측 대리인으로 활약하면서 상당한 재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대표는 사찰 은폐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 대표의 딸인 박아무개(27)씨가 2010년 7월7일 휴대전화를 개통했는데, 이날은 장 전 주무관이 디가우징을 했던 날이다. 장 전 주무관은 이영호 전 비서관이 준 대포폰으로 디가우징 상황을 보고할 것은 지시받았는데, 이 대포폰으로 통화한 기록에 전 대표의 딸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가 남아 있다. 정황상 장 전 주무관이 디가우징을 하면서 통화한 이는 전 대표의 딸인 박씨인 셈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아는) 교수님이 요청해 제 이름으로 만들어 드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명의를 빌려 준 교수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박씨 명의의 휴대전화도 대포폰이었던 것이다. 대포폰으로 통화했던 이를 밝히면 증거인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이가 드러나게 된다. 한겨레신문은 박씨 명의를 빌린 사람이 이우헌 상무라고 보도했으나 이 상무는 대학 강단에 선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박씨의 설명과는 다르다.

선진노사연구원,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선진노사연구원은 2008년 5월 설립됐다. 당시 이사장은 박영수 전 한국근로기준협회 회장(국민대 겸임교수), 이사는 전혜선 대표를 비롯해 7명의 교수·노무사로 구성됐다. 선진노사연구원이 대중 앞에서 첫선을 보인 사업은 그해 10월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다. 토론회에서는 박영수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현재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인 이강성 삼육대 교수가 원장 자격으로 사회를 봤다.

이들의 인연은 2007년 대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 전에 구성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노동위원회 위원 명단에는 당시 한국근로기준협회 부회장이던 이강성 교수, 전혜선 대표가 이영호 전 비서관이 함께 올라 있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전 한국노총 금융산업노련 부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노동위원장은 배일도 전 의원, 집행위원장은 김준용 뉴라이트신노동연합 공동대표였다.

이들은 대선 승리 뒤 구성된 한나라당 중앙노동위원회에도 참여한다. 전혜선 대표는 위원으로, 박영수·이강성 교수는 자문위원을 맡았다. 나중에 선진노사연구원 이사로 취임한 전아무개 변호사도 노동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 변호사는 2008년 인천지역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선진노사연구원은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다. 일례로 2008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는 별도로 40여명 규모의 특별회의를 주최했다. 특별회의는 세계보건기구(WHO) 회의나 국제안전보건전문기관 네트워크(INSHPO) 간부회의·미국안전협회(NSC) 회의 등 13개 주요 기관의 회의로 구성된다. 세계대회를 주최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현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영향력을 인정받았던 셈이다.

고용노동부로부터 비영리단체 지원금도 받았다. 연간 5천만원에 달하는 돈으로 2009년에는 비정규직법 해설 및 차별사례 실무교육을, 2010년에는 타임오프와 노사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무료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회원 간 결속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에는 이사진이 새로 꾸려졌다. 전혜선 대표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사 일부가 빠졌다.

특혜일까, 실력일까

연구원 임원직을 그만두는 때는 대개 공직이나 공공기관으로 진출한 시기와 일치한다. 일각에서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덕을 봤다는 얘기가 돌았다. 박영수 이사장은 2010년 6월30일자로 노동부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교육원장으로 가면서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이우헌 사무총장은 2008년 11월 근로복지공단 기획이사로 갔다가 지난해 8월 공공기관인 코레일유통의 유통담당 상무로 옮겼다.

박영수 이사장은 민간기업 사외이사로도 일했다. 그는 2009년 3월부터 기아자동차 노동분야 사외이사로 근무했다. 그런데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퇴임했다. 공시일자는 2010년 7월8일이었다.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박 이사장 이전에 기아차에는 노동분야 사외이사 자리는 없었다. 박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해당 회사에서 법무·회계·노무분야 사외이사를 채용했다”며 “노무사 업무를 해서 전문성이 있고, 박사학위가 있어 발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임과 관련해서도 “교육원장으로 오면서 공공기관 기관장을 겸임할 수 없어 사외이사직을 내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이달 25일 원장직을 사임하고 ㄷ전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때 원장직을 수행했던 이강성 교수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일으켰던 이영호 전 비서관의 자리로 갔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된 것이다. 이 교수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근로복지공단 비상임이사도 지냈다. 전혜선 대표는 2009년부터 안전보건공단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연구원 이사로 있던 박아무개(50) 노무사는 2009년 중앙노동위원회 고위직에 올랐다. 박 노무사는 주로 사용자사건을 대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노무사는 “2009년 선진노사연구원을 탈퇴해 지금은 아무런 관련도, 교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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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 선진노사연구원, 정부 노동정책에 영향 미쳤나
쌍용차 점거시위 거부감 표출 … 쟁의행위 제한 주장도

- 이강성 교수, 노조법·일자리 정책 정부정책에 관여한 듯

한국선진노사연구원의 핵심 사업은 ‘선진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정책연구와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연구·교육과 직업알선·해외파견 등 고용촉진 사업이다. 그런데 연구원의 집단적 연구성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2009년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선진쟁의질서에 대한 연구’ 정도다. 해당 연구용역에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대표노무사와 연구원 이사인 전아무개 변호사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정도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을 거론하며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의 허용으로 파업은 직장점거라는 관행이 형성되고 직장점거의 형태가 법에서 허용한 한도를 초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법 42조1항과 시행령 21조를 개정해 점거가 금지되는 시설을 포지티브하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점거가 허용되는 시설로 제한적으로 규정하거나 사업장 내의 직장점거를 일체 불허하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필수공익사업장에서 대체근로의 비율을 삭제하고, 교섭대표인정을 위한 쟁의행위를 금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구원 인사 중에서 정부 정책 개입력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한 이는 이강성 삼육대 교수(전 한국선진노사연구원장·현 청와대 비서관)이다. 특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과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관여한 흔적이 남아 있다.

2008년부터 연구원이 주목한 과제도 노조법 개정이었다. 연구원이 처음 개최한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는 그런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강성 비서관의 관심도 그곳으로 향했다. 이 비서관은 정부의 공적인 기구에 속속 참여했다. 2008년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구성된 의제별위원회인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나섰다. 노사관계선진화위는 13년 동안 유보됐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터라 노사정위 추천 공익위원에 누구를 포함시킬지를 놓고 논란이 됐다. 공익위원 안에서도 노사 추천 공익위원이 팽팽하게 맞서면 노사정위 추천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효과는 컸다. 노사정은 합의안을 만들지 못했고, 이에 따라 별도로 제출된 공익위원안이 논의의 방향을 바꿔 버렸다. 전임자임금을 금지하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제안한 것도 그렇고, 과반수교섭대표제에 의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힘이 실린 것도 공익위원안 때문이다.

공익위원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바로미터가 됐다. 당시 노사관계선진화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공익위원들은 개별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는 서로 입장을 조율해 공익위원안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강성 교수는 현행법 준수 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노사관계선진위 공익위원 추천과 관련해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비서관이 2008년 노동부 산하기관장 물망에 올랐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2007년 대선 이전부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노동정책 수립에 관여하면서 당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서관과 친분이 있는 A교수는 “(이 비서관이) 처음에 배일도 의원을 도와주면서 이명박 선거 캠프에 참여했다”며 “나중에 배 의원이 캠프에서 나올 때 계속 잔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법은 2010년 1월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비서관은 노사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였던 2009년 후반 청와대에 꾸려진 비밀TF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밀TF는 청와대 경제팀이 주도해 노조법 ‘선 시행·후 보완’이라는 강경론을 설파했다. 한국노총이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비난했던 바로 그 세력이다.

이 비서관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근거를 제공했다는 흔적은 또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 비서관은 삼육대 교수이던 2009년과 2010년 청와대와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을 다수 수행했다. 2010년 대통령실이 발주한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 전략’과 2009년 역시 대통령실이 발주한 ‘일자리 대책의 연착륙 방안 연구’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0년에는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명칭을 전환하고 정책의 중심을 노사관계에서 고용으로 옮기던 시절이었다.

이 밖에도 2010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주한 ‘주요국의 구직자 사전분류와 고용서비스 차별화 사례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근무형태별 근로실태에 관한 조사 및 분석 연구’에 참여했다. 이 비서관은 같은해 노사발전재단이 발주한 4개의 연구에 연구자로 참여했다.

2009년에는 노동부가 발주한 ‘최근 호주의 노조전임자 및 관련 노사관계제도 변화에 관한 연구’, ‘최근 미국·캐나다 노사관계 입법동향과 시사점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계희 기자/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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