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현대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10명의 노동자가 숨졌기 때문이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이 집계한 결과다.

현대건설은 지난 2007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뽑혔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현대건설 현장에서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31명에 이른다. 사망사고가 많은 건설업체 가운데 1위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일이 빈번하면 현대건설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현대건설은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해 건설 실적 1위를 차지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대건설은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 불린다. 2007년에 이어 2012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현대건설이 사회적 책임 기업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왜 그럴까.

현대건설은 지난 2010년 유엔글로벌콤팩트 협약에 가입했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지난 2000년 제정된 국제협약으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면 사회적 책임 활동을 벌여야 한다. 인권·노동규칙·환경·반부패·안전 등 10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현대건설은 지난 2년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전문기관인 CR사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아 본상까지 받았다. 국내 기업으론 최초다. 이것만 아니다. 현대건설은 유사한 국제협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에도 가입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빈번한 건설업체인데도 국제협약에 가입하면서 지속가능경영을 하는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사실, 현대건설이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 포장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건설은 재해율이 건설업 평균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고 홍보한다.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다. 공동 캠페인단이 발표한 10명의 산재 사망자는 현대건설 현장에서 일한 하청업체 노동자다. 공동 캠페인단이 분석한 것은 중대재해 발생현황 보고자료로, 사고가 일어난 현장의 원·하청 기업 모두가 기록돼 있다. 비록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가 재해를 당했더라도 사고 책임은 원청기업에 있다는 게 공동 캠페인단의 판단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재해율이 건설업 평균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는 현대건설의 주장은 틀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르면 원청기업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산안법 29조에 따르면 ‘도급사업에서의 안전보건조치 대상 사업’으로 건설업, 선박·보트 건조업, 토사석 광업, 제조업 등이 명시돼 있다. 하청기업에서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원청기업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대건설 같은 원청기업은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면 외면한다. 한 작업장에서 여러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가 일하기에 관리가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산안법이 있으나 마나인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당국의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 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를 최고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그런데 사법처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현장에서 사업주가 구속된 사례는 단 7건이다. 구속을 면한 사업주가 받은 벌금형도 대부분 300만원에 불과했다. 원청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기업도 사법처리에서 면제받으니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2천114명에 달해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를 기록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산재 다발업체인 현대건설도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나라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조건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포함돼 있다.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라도 예외는 아니다. 하청기업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숨지면 원청기업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처럼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주에 관한 처벌은 엄격해야 한다. 산재 사망도 살인이다. 살인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선 유명무실한 산안법이 개정돼야 한다. 앞으로 개원될 19대 국회가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산재 사망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살인기업임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포장하는 현대건설과 같은 사례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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